[한계돌파] 실크로드 끝에서 '인조 비단'으로 대박…터키 여심 잡다

입력 2015-07-02 22:02  

해외서 꽃피우는 기업가 정신 (13) 터키 최대 폴리에스테르 업체 SLD 김성렬 회장

이스탄불 등 42곳 매장…"SLD 원단 윤기·감촉 탁월"
빅사이즈 여성복 인기몰이…러시아·동유럽 진출 계획도

상사맨 뚝심으로 버텨…효성 지사장 때 걸프전 겪어
임원 자리도 포기하고 창업…"'미생'들 명예 지켜내야죠"



[ 정영효 기자 ]
이스탄불의 고급 쇼핑몰 보이네르와 차르슈에는 중상류층을 겨냥한 고급 의류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다. 이곳에서 요즘 가장 많이 관심을 받는 브랜드는 엑스라지(XL) 사이즈 여성복 전문 브랜드인 ‘클라우디아 밀렌(Claudia Millen)’이다. 이 브랜드는 출시 3년 만에 자라와 망고 등 글로벌 브랜드와 어깨를 견주는 유명 상표로 자리잡았다. 이스탄불과 주변 도시에 42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이 브랜드의 강점은 스타일과 사이즈다. 빅사이즈면서도 착용감이 편하고, 라인이 살아 있어 40대 현지 중산층 여성들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브랜드를 제작한 김성렬 SLD 회장(63)은 현지에서 ‘중년 여성의 구세주’란 평까지 받고 있다.

빅사이즈에 터키 중년여성 열광

김 회장은 밀렌 출시 이전부터 현지에서 ‘한국인 거상’으로 이름을 날렸다. 언론은 그를 소개할 때 ‘실크로드의 종착역인 터키에 현대판 실크(폴리에스테르)를 파는 한국인’이라는 설명을 붙인다.

폴리에스테르가 ‘현대판 실크’로 불리는 이유는 감촉과 윤기 때문이다. 실크에 버금간다. 김 회장이 1996년 세운 SLD의 폴리에스테르 매출은 현지 1위다. 주로 한국에서 수입, 판매한다. 한국산 폴리에스테르는 ‘터키에서 구할 수 없는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터키 연예인들도 SLD 원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출연한다. 홈스토어, 폴로, 개라지, 에콜 등 터키 고급 여성의류 브랜드는 SLD의 폴리에스테르를 손에 넣기 위해 줄을 선다.

업력이 100년을 넘는 섬유·의류업체가 수두룩한 터키에서 한국인이 세운 SLD가 최대 섬유업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결은 뭘까. 김 회장은 “섬유와 의류산업에서 성공하려면 감각과 자금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봄·여름과 가을·겨울 매년 두 차례 변하는 트렌드를 1년 전에 미리 읽어내는 감각과 유행할 원단을 미리 사들일 수 있는 자금력을 갖춰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우선 트렌드를 제대로 읽는 게 중요하다. 트렌드를 제대로 읽으면 대박이 나지만 실패하면 미리 사둔 원단이 악성 재고로 변한다. 트렌드 파악은 김 회장의 아들 김윤석 기획실장이 맡고 있다. 김 실장은 터키어와 프랑스어 영어 등 3개국에 능통한 재원이다. 김 실장이 파악한 트렌드에 따라 김 회장은 매년 두 차례 한국에서 원단을 수입한다. SLD가 들여오는 원단은 디자인과 색감 면에서 현지 경쟁사들을 압도한다. SLD는 계절마다 원단 구매비용의 90%를 새 트렌드를 겨냥한 제품을 구매하는 데 쓴다. 현지 업체들은 재고를 두려워해 배짱 투자를 하지 못한다. 시장성이 이미 검증된 무난한 스타일의 원단에 주로 투자한다. 김 회장은 “터키에서 새로 유행할 원단에 반기마다 200만달러를 투자할 수 있는 회사는 SLD뿐”이라고 말했다.

“이슬람선 매출채권 관리 신경써야”

이슬람국가 터키는 외국인이 사업하기 매우 어려운 나라로 꼽힌다. 규제가 까다롭고 사업 허가를 받기도 힘들다. 한국인 동포가 4000여명이나 사는 이스탄불에서도 SLD처럼 현지에서 창업해 자리를 잡은 회사는 손에 꼽힐 정도다. 김 회장은 “한국 종합상사맨의 경쟁력 덕분”이라고 했다.

고려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김 회장은 1979년 효성물산에 입사해 줄곧 중동지역 섬유무역을 담당하는 상사맨의 길을 걸었다. 쿠웨이트 지사장이던 1990년엔 걸프전이 발발했다. 그해 8월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머리 위로 쏟아지는 총탄을 피해 요르단 국경으로 탈출했다. 중동시장에서 손을 떼려는 회사를 설득해 쿠웨이트 철수 8개월 만인 1991년 2월 이스탄불 지사를 개설했다.

처음 이스탄불 지사를 열었을 때만 해도 한국의 터키 수출규모는 2억달러에 불과했다. 교역 품목도 전자제품과 자동차뿐이었다. 그는 터키 지사 개설 5년 만에 4억달러어치의 섬유를 수출했다.

입사동기 가운데 실적도 가장 좋았고 승진도 빨랐다. 1996년 개인회사를 차리려 하자 주위에서 반대가 많았다. 특히 부인이 창업하는 것을 극구 말렸다. 샐러리맨의 꽃이라는 임원 승진이 눈앞인데 왜 굳이 모험을 하느냐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평생을 상사맨으로 살아온 그는 임원이 되기보다 자기 일을 해보고 싶었다. 쉽게 하려면 한국에서 창업한 뒤 터키에 수출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역은 무조건 시장밀착형이어야 한다고 배웠다.

터키 뚫으면 3억 터키어권 시장 열려

호기롭게 나왔지만 터키에서의 사업은 만만찮았다. 특히 매출채권 회수에 애를 먹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외상을 갚아야 한다는 개념이 희박했다. 돈을 준다고 해도 기일을 맞추는 경우가 드물었다. ‘한달 후 갚겠다’는 말은 ‘1년 후 갚겠다’는 말로, ‘1년 후 갚겠다’는 말은 ‘나중에 내 아들이 갚을테니 걱정 말라’는 말로 알아듣고 사업하는 게 편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노하우가 생겼다. 차츰 현금거래 비중을 높게 가져갔고, 위험한 채권은 미리 10~20%가량 떼일 것으로 간주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관리했다.

김 회장은 “몇 가지 장벽만 넘으면 터키는 정말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말했다. 터키 인구는 8000만명이다. 터키 국민은 한국에 대해 ‘형제 국가’란 호감이 있어 한국의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이고 교역하는 데 거부감이 없다. 터키를 뚫으면 인근 시장도 함께 열린다. 터키 인근 아제르바이잔과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전역이 터키어권이다. 3억명의 터키어권 시장이 열린다고 할 수 있다.

김 회장은 러시아와 동유럽 진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스탄불=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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