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긴축안 반대'] 그리스 청년 절반이 실업자…"유로화든 드라크마화든 상관없다"

입력 2015-07-06 20:53  

왜 반대표 던졌나

채권단, 구제금융안 수용하면 어떤 이득 있는지 설명 못해
나치 정권의 그리스 약탈 등 독일에 대한 역사적 앙금도 작용



[ 임근호 기자 ] 172년 전 그리스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역사적 장소인 신타그마 광장은 5일 저녁(현지시간)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이날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국제채권단의 제안을 거부하는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면서였다. 수도 아테네의 중심가에 있는 이 광장은 순식간에 그리스 국기를 몸에 두른 사람들로 가득찼다. 뉴욕타임스(NYT)는 “광장에 모인 그리스 국민은 환호성을 지르거나 저항을 상징하는 노래를 부르며 승리를 만끽했다”고 전했다.

채권단은 “그리스 국민이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분명 찬성에 표를 던질 것”이라며 수월한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 61.3%, 찬성 38.7%로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그리스인들을 절망의 길로 이끌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채권단이 그리스인의 정서와 경제적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EU 지도자들 강경 발언이 반발 불러

볼프강 문차우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왜 예스 캠페인은 그리스에서 실패했나’는 글에서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의 지나친 내정 간섭 발언이 그리스인들의 반발을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투표를 앞두고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등은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지는 것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아왔다. 찬성을 유도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는 지적이다.

NYT도 “그리스인의 마음에는 1803년 오스만제국과의 독립전쟁 때 항복하기보단 폭탄을 터뜨려 적과 함께 전사한 역사적 사건이 깊이 각인돼 있다”며 “이번에 반대표가 많이 나온 배경에도 그런 정서가 깔려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요 채권국인 독일에 대한 역사적 앙금이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리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1년 1월부터 약 3년간 독일과 이탈리아 등에 점령당했다. 독일 나치 정권 아래서 수많은 그리스 국민이 강제 징병·징용으로 희생됐고 값비싼 고대 유물도 약탈당했다. 그리스 정부가 올해 초 채무 재조정을 요청하면서 나치 피해 배상금을 요구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그리스 정부는 나치 정권이 그리스를 점령해 피해를 입힌 대가로 독일 정부에 2787억유로(약 347조원)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독일은 이미 1960년에 그리스의 요구로 1억1500만마르크(약 750억원)를 지급했다며 거부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독일이 강경한 목소리로 채무 상환 압박을 가하자 그리스 국민은 채권단의 제안 자체에 반감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리스 청년 실업률 50% 육박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만큼 그리스인들이 궁지에 몰린 것도 요인이다. 유로존 위기가 발생한 2010년 이후 5년 동안 그리스 국민의 삶은 궁핍해졌다. 2009년 9.6%이던 실업률은 지난해 26.5%까지 치솟았다. 그리스의 청년 실업률은 50%에 육박한다. 문차우 칼럼니스트는 “이미 상당수가 직장을 잃고 방황하는 그리스인들에게 유로화냐 드라크마화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다 실직한 앤시 파나기오티오우는 NYT에 “5년간 계속된 긴축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반대했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추가 구제금융이 없으면 그리스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고만 할 뿐 구제금융으로 어떻게 그리스가 나아질 수 있는지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다. 긴축 프로그램을 또 받아들인다고 해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불신이 사회 전반에 깔렸다는 분석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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