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만기 도래 35억유로 못 갚으면 디폴트
재협상 가능성 있지만 시간 끌다 파국 우려
[ 박종서/이심기 기자 ]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을 거부하는 의견(61.31%)이 압도적 우위를 나타내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6일(현지시간) “그리스가 유로존 탈퇴(그렉시트)의 길을 향해 천천히 행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으로 구성된 국제 채권단이 대규모 부채 탕감을 포함한 그리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빠듯하기는 하지만 시간이 약간은 남아있어 극적 타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리스 “협상 이틀 안에 타결”
채권단은 국민투표 이전부터 “반대표가 많으면 EU에서 떠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며 “재협상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이 좋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재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그리스와 채권단 모두 극단적인 상황은 피하고 싶기 때문에 협상 자체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재협상 여부는 7일 오후 6시(한국시간 8일 오전 1시) 유로존 정상들의 긴급회의에서 결정된다. 재협상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3차 구제금융이 시행되고 그렉시트 위험은 사라진다.
그리스는 협상을 시작하면 일사천리로 타결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국민투표 전에 “재협상에 들어가면 이틀 만에 합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그의 ‘오른팔’이자 강경파 협상가인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을 사임시키면서까지 타결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렉시트 가능성 70%”
협상에 적극적인 그리스와 달리 채권단은 단기간에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스가 IMF 보고서를 근거로 부채 탕감을 요구하고 채권단의 추가 양보를 주장할 경우 들어주기 힘든 탓이다. 영국 가디언은 “그리스와 채권단의 의견 차이가 커 재협상을 한다고 해도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며 “오는 20일 그리스가 ECB에 35억유로를 갚을 때까지 타결이 이뤄질지도 의문”이라고 전망했다.
만약 그리스가 20일 만기가 돌아오는 ECB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면 곧바로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진다. 지난달 30일 IMF에 15억유로를 갚지 못했을 땐 ‘체납’으로 분류했지만, ECB는 바로 디폴트로 처리한다.
디폴트가 발생하면 ECB는 규정에 따라 그리스 시중은행에 긴급유동성지원(ELA)을 중단한다. 예금은 들어오지 않고 하루 10억유로 이 瓚?자금이 빠져나가는 그리스 은행들은 파산이 불가피하다. 금융시스템이 일거에 마비될 수 있다. 이때부터는 그렉시트를 막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그리스 정부는 유로화가 바닥나면 공무원 월급과 연금 등 각종 정부 지출을 차용증(IOU)으로 지급할 수밖에 없다. IOU 사용마저 한계에 도달하면 다음 수순은 새로운 화폐다. 일각에서는 IOU를 발행하면 치프라스 총리가 실각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해 채권단이 그리스의 새 정부와 재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하지만 실행되기 쉽지 않은 시나리오라는 평가가 많다. BNP파리바은행은 그렉시트 가능성을 70%로 예상했다.
◆‘전략적 이유’ 타협 바라는 미국
중요한 변수 중 하나는 미국이다. 미국은 러시아와의 관계 등 지정학적·전략적 이유에서 그렉시트를 원치 않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그리스가 유로존 안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EU와 IMF가 그리스 정부와 어떻게 협력할지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로부터 듣기 원한다”며 그리스의 최대 채권국 독일을 압박했다. 미국의 이 같은 반응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떨어져 나가면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박종서 기자/뉴욕=이심기 특파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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