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은 지키게 하고 규제는 걷어내 신뢰란 이름의 사회적 자본 쌓아야
유지수 < 국민대 총장 jisoo@kookmin.ac.kr >
이민을 가겠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젊은 층 비중이 높다. 정치권이 밤낮없이 싸우는 꼴이 보기 싫어서,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나라에서 아이들 키우기가 무서워서, 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해서라고 한다.
실제로 이민자 수는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취업비자를 받은 한국인은 5945명으로 9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조국에 대한 자부심도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올초 한 여론조사 업체의 설문에 의하면 ‘다시 태어나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응답은 30.2%에 불과했고, ‘요즘 같아선 대한민국에 다시 태어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답한 사람이 57.9%에 달했다. 영국 같은 나라는 거꾸로 인구가 늘고 있다. 역대 최대인 6460만명을 기록했는데 인구 증가의 주원인이 이민자 유입이라고 한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2030세대가 이민을 떠나면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아이를 낳지 않는데 젊은이마저 떠나면 노인만 남게 된다. 심각한 문제다.
1957년 한국과 아프리카 가나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비슷했다고 한다. 지금은 한국의 1인당 GDP가 가나보다 20배 가까이 많다. 이렇듯 한국 국민의 장점은 근면하고 저돌적이라는 것이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창의성도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일은 적게 하고 더 많이 받으려는 문화가 생겼다. 도전하고 모험을 하기보다 안정을 추구하고자 한다. 책임을 지는 일은 피하려고 한다. 점점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다.
성장 과정에 있는 나라는 비슷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경제가 성장하고 기업이 커지면 규제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그렇게 규제가 많아지면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는 현상을 외국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은 그야말로 ‘규제 천국’이다. 규제가 우리 자신을 묶고 우리가 가진 장점을 서서히 파괴하고 있다. 과거에는 우리 기업이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로 돌파구를 만들고는 했다. 기업의 그런 창의성은 요즘과 같은 규제 천국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왜 그렇게 많은 전문가가 그렇게 많이 규제철폐를 외쳤는데도 규제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은행에서 계좌를 하나 개설하려면 10번 이상의 서명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애플페이를 사용하면 5분 만에 결제 끝인데 우리의 유무선 결제시스템을 사용하려면 이를 악물고 30분을 씨름해야 한다. 수많은 보안패치를 설치해야 하고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야 한다. 웬만한 인내심을 갖고서는 결제가 불가능하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스스로를 외면하게 됐다. 어처구니없는 규제를 접할 때마다 국가에 대한 신뢰가 사라 愎? 필요없는 규제는 없애고 필요한 법과 규제는 반드시 지키게 해야 한다. 특히 안전에 관한 규제가 그렇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일부에서는 정부를 맹비난했지만 문제의 근원은 규정을 지키지 않은 관행이다. 한심한 것은 이런 끔찍한 비극을 겪고도 여전히 선박에 실은 차량을 단단히 고정하지 않은 채 운항한다는 점이다. 길을 걸으면 곡예운전을 하는 오토바이가 옆을 스쳐 지나간다. 길을 건너려고 하면 신호등을 무시한 고급차가 쏜살같이 앞을 지나간다. 고급차는 거리에 많은데 고품격 운전자는 드물다. 누가 누구를 탓하랴. 우리 모두의 준법의식이 아프리카 저개발국 수준인데. 아마도 우리가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일그러진 자화상을 매일 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국가 발전은 결국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가 사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선진국 진입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된다. 규제는 필요하지만 합리적이고 현명한 규제여야 한다. 특히 국민안전에 관한 법은 반드시 지키게 해야 한다. 그렇게 경제에 관한 신뢰, 법과 질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신뢰회복만이 탈(脫)한국을 생각하는 젊은이를 붙잡는 최선의 방법이다.
유지수 < 국민대 총장 jisoo@kookmin.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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