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손기정 선수의 외손자
1936년 베를린올림픽 참가 그 길
우승자 명패 '한국 병기' 요청할 것
[ 이미아 기자 ] “할아버지께선 세계 마라톤 역사에 남을 위대한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당신의 역량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죠. 저의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 참가가 ‘인간 손기정’이 재평가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고(故) 손기정 선수의 외손자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48)은 10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외교부 주최로 진행되는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에 초청돼 오는 14일부터 19박20일 동안 유라시아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와 중국, 폴란드, 독일 등 1만4400㎞의 여정에 나선다.
특히 독일 베를린까지 향하는 1만1000㎞는 손 선수가 79년 전 남승룡 선수와 함께 올림픽 참가를 위해 몸을 실었던 베를린행 열차가 달렸던 길이다. 이 사무총장은 “외교부로부터 지난 4월 초청받은 뒤 세부 일정은 지난달 확정 통보받았다”며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되짚는 길이기에 정말 뜻깊게 다가온다”고 전했다.
이 사무총장은 “할아버지는 영웅적 마라토너로서의 면모보다는 늘 주변 상황에 의해 희생된 슬픈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됐다”며 “일제강점기와 남북 분단의 비극을 모두 겪은 할아버지의 일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손 선수는 일본인 선수들을 실력으로 이기고 올림픽 대표로 선발돼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했다. 히틀러가 이끌던 독일 나치 정권은 베를린올림픽을 통해 “아리아인이 우월하다”고 선전하려 했지만, 손 선수는 동양인으로 ‘올림픽의 꽃’ 마라톤 우승자가 돼 히틀러와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올림픽 기간 내내 “나는 한국인”이라 했던 손 선수는 일장기를 가슴에 단 채 시상대에 올라야 했다. 광복과 분단 후엔 신의주 출신이면서도 남쪽을 택했다는 이유로 북에선 잊힌 영웅이 됐다.
이 사무총장은 유라시아 친선특급의 후반 기착지인 베를린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베를린주경기장에 있는 ‘Son. Japan(손, 일본)’이라 적혀 있는 손 선수 명패에 한국 국적을 병기해 달라고 독일올림픽위원회에 요청할 계획이다. 그는 “당시엔 한국이란 나라가 없었기에 일본이라 표기된 걸 없애달라 하는 건 또 하나의 역사왜곡이 되는 것이기에 한국 국적을 같이 표시해 달라는 부탁을 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손 선수도 생전에 이 일이 성사되길 원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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