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두고 통신업계에서 ‘단체로 고통받는 법’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시행될 때부터 예견됐던 부작용들이 하나둘 현실화하고 있어서다. 휴대폰 제조사, 소비자, 통신 판매점 모두 단통법 피해자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우선 휴대폰 시장이 심상치 않다. 단통법이 시행된 뒤 국내 휴대폰 판매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단통법은 기업들의 마케팅 경쟁 수단인 휴대폰 보조금을 1주일 단위로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조금 상한마저 33만원으로 묶어두는 바람에 시장 경쟁이 위축되고 보조금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휴대폰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부담이 그만큼 커졌으니 구매가 늘어날 턱이 없다. 고가 스마트폰 시장은 패닉 상태다. 연간 1200만대였던 고가폰 시장이 반 토막 났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제조사·소비자·판매점 ‘패자’
LG전자가 휴대폰 보조금 상한선을 폐지해 달라고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에 건의서를 제출한 것은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단통법 도입 당시 찬성했던 LG전자가 작심하고 건의서를 낸 것만 봐도 시장의 심각성을 짐작하고 남는다. 국내 3위 휴대폰 제조사였던 팬택이 파산 일보 직전까지 내몰렸던 것도 단통법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소비자들도 단통법 ‘루저(loser)’이긴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30만~40만원이면 살 수 있던 고급 휴대폰을 이제는 70만원 이상 줘야 할 정도로 부담이 커졌다. 이러다 보니 다른 통신사로 옮겨 가는 이동전화 번호이동 건수가 크게 줄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지난 1월 75만6654건이던 이동전화 번호이동은 지난 6월 52만5584건으로 31% 감소했다.
통신 판매점들은 폐업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단통법 시행 이전 2만여개에 달했던 판매점은 1만3000개 안팎으로 줄었다. 7000여개의 판매점이 문을 닫는 바람에 일자리 2만여개가 없어졌다. 살아남은 판매점들마저 장사가 안 된다며 울상이다. 마케팅 비용을 많이 쓸 수 없게 된 통신사들의 수익 구조만 좋아졌다.
규제만 골몰하는 정부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딴소리다. 대책 마련은커녕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다. 제조사에는 휴대폰 출고가를 낮추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고가폰 시장은 애플에 내주고 중저가폰이나 팔라는 말처럼 들린다. 소비자들에겐 보조금을 받지 않는 게 더 유리하다는 논리를 편다. 휴대폰 보조금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통신요금의 20%를 할인받는 선택약정요금제에 가입하는 것이 통신비 절감 방법이라는 것이다. 주머니 사정 때문에 고가폰을 구입하기 어려운 서민들에게 ‘중고폰이나 쓰세요’라고 권유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규제 수위를 높이는 데 골몰하고 있다. 위기에 내몰린 판매점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통신사들의 직영점 신규 출점과 주말 영업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통신사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방통위가 단통법 위반 단속을 강화하기 위해 전담부서를 신설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다. ‘호갱(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손님)’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도입한 단통법이 공무원 일자리만 늘리고 규제 권력만 키우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박영태 IT과학부 차장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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