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도 만만치 않다. 결합상품에 따른 통신비 인하 효과가 소비자 편익을 증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당장 결합상품을 금지하면 그만큼 소비자 부담이 커지게 된다. 결합상품 판매에 따른 특정 사업자의 시장지배력 전이 여부도 아직 명확하게 입증된 바 없다는 견해도 있다. 담당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1월 ‘결합상품 제도개선 연구반’을 꾸려 규제 타당성 여부를 검토 중이다. 방통위와 미래부 측은 조만간 결론을 내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삼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부회장은 “결합상품을 판매할 때 할인액을 몰아줘서 방송이나 초고속인터넷을 공짜로 끼워 파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공정경쟁을 위해 단품 요금(공정 가치) 기준으로 상품별 할인율을 차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경원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결합상품을 통한 사업자 간 경쟁이 이제서야 첫발을 뗀 시점”이라며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면 소비자의 통신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찬성 / ‘방송·인터넷 끼워 팔기’ 부작용…시장 교란 막는 제도 개선 시급
이통사 독주에 케이블사 가입자 유치 어려워
‘결합판매 제도개선’은 결합판매 제한이나 할인율 축소와 같은 규제 강화 논의가 결코 아니다. 즉 결합판매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후생이 저해될 염려가 없다는 의미다. 정부도 이용자 편익을 유지·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율한다는 입장이다.
케이블업계는 시장을 교란하는 결합상품의 허위·과장 마케팅을 근절하고 이동통신시장 지배력이 부당하게 유선시장에 전이되지 않도록 하는 선에서 최소한의 조치를 요청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나쁜 마케팅을 근절하는 것이다. 특히 이동통신 결합상품을 판매하면서 할인금액을 몰아서 방송이나 초고속인터넷을 공짜로 끼워 파는 것이 문제다. 이용자를 속여 결합상품에 묶어두는 한편, 이동통신시장의 힘을 활용해 유선분야 경쟁자를 무력화하는 불공정 마케팅이다. 이동 恍?점유율이 50% 정도인 SK텔레콤은 이동통신시장 지배력 전이의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 통신사의 광고와 마케팅은 이동통신 결합판매에 집중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동통신을 포함한 결합상품 점유율이 2011년 11.5%에서 2014년 36.5%로 급상승했다.
마케팅 현장에서의 체감도는 이 수치를 훨씬 초월한다. 이동통신 결합판매 자체가 어려운 케이블사들은 유료방송 상품을 판매하려 해도 이통사의 ‘방송공짜’ 마케팅 공세에 가입자를 유치하기 어렵다.
허위·과장 광고에 대해 지난 5월 말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과징금을 부과했음에도 여전히 현장에는 비슷한 마케팅이 줄지 않고 있다. 규제 미비점을 개선하지 않고 불법행위 단속을 강화하는 정도로는 근절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이통사들이 초고속인터넷이나 인터넷TV(IPTV) 사업부문을 통합 운영하거나 수직계열화된 조직의 내부거래를 통해 임의로 할인비율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동통신시장은 5 대 3 대 2의 비율로 통신 3사 가입자 점유율이 고착화돼 있다. 반면 초고속인터넷이나 방송시장은 통신사업자와 케이블사업자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이다. 이동통신시장의 영업이익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SK텔레콤이 무선시장 지배력을 활용해 유선상품을 공짜 또는 약탈적 할인가격으로 제공하면 경쟁은 차단된다.
이런 공정경쟁을 위해서는 단품 요금(공정 가치) 기준으로 상품별 할인율을 차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서비스별로 원가나 결합판매로 인한 기대수익이 달라 동등비율로 할인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비용과 수익을 명확히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이런 검증시스템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결합에 따른 기대이익이 명확하지 않다면 비용이나 수익배분을 동등하게, 또는 개별상품 요금 수준에 따라 동일비율로 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사업자 자율이라는 미명 아래 지금처럼 임의로 상품 할인율을 조정하도록 한다면 SK텔레콤은 이동통신시장 지배력을 넘어, 유선시장의 지배력도 크게 높일 수 있다. 방송·통신시장 전체에 걸쳐 유효경쟁이 저해되면 취약한 수익구조의 유료방송시장은 가장 먼저 황폐화되고 콘텐츠시장까지 망가지게 된다.
선진국들은 기득권을 가진 사업자가 시장지배력을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엄격한 경쟁 활성화 정책을 펼쳐왔다. 공정가치 기준에 따라 할인율을 적용하는 ‘동등할인’은 이용자 이익을 보호하면서도 공정경쟁을 작동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다.
반대 / 전체 가구 85%가 결합상품 이용…요금 경쟁으로 소비자 혜택 늘어
결합상품 통한 사업자간 경쟁 더 활성화해야
최근 통신시장에서 결합판매 규제 이슈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동통신시장의 지배력 전이 여부, 결합판매 규제 강화 여부 등을 놓고 통신 사업자 간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소비자단체들도 각자 입장에 따라 목소리를 달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간 진행된 논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아쉬운 점이 있다.
우선 시장지배력 전이라는 용어 사용이 남용되고 있다. 자칫 통신시장의 경쟁이 정확히 기술되기보다 전체가 아닌 일부분이 부각되거나 왜곡돼 알려질 수 있다. 결합판매의 부정적인 기능이 지나치게 강조돼 긍정적인 기능이 희석될 수도 있다. 물론 결합판매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그 힘을 이용해 다른 시장의 경쟁 정도를 악화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통신시장의 규제기관도 이를 인지해 2007년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결합판매를 허용하면서 지나친 결합상품 할인을 제한하는 사전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아울러 매년 경쟁 상황 평가를 통해 경쟁 제한적 행위를 감시하는 사후 규제도 시행 중이다.
최근 정부의 경쟁 상황 평가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통신 서비스별 1위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소폭이지만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통신시장의 경쟁 정도가 미흡하지만 조금이나마 개선되고 있고,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결합판매가 경쟁 사업자를 배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 아쉬운 점은 최근의 논쟁에서 어떻게 하면 결합을 통해 이용자들이 더 많은 편익을 누리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배제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결합판매 규제 강화가 왜 이용자 편익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 정부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게 결합판매를 허용하고 규제 완화를 한 것은 가계통신비 부담을 낮추려는 취지였다. 지난달 발표된 정부의 ‘이동통신시장 경쟁촉진 및 규제합리화를 위한 통신정책 방안’도 가계통신비 부담 麗㉯?최우선 목적이었다. 이런 일련의 정책은 이용자 편익을 중심으로 방향이 설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통신시장은 결합상품의 시대로 탈바꿈했다. 2013년 말 기준으로 한국 전체 가구 중 85.3%가량이 결합상품에 가입했다. 거의 모든 이용자가 결합상품을 통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또한 여러 서비스가 묶이는 TPS(세 상품 묶음) 또는 QPS(네 상품 묶음) 비중이 53%에 이를 정도다.
이 같은 시장 상황을 감안해 정책이 의도한 대로 결합상품을 통한 요금경쟁 활성화가 실현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서는 한국 결합상품 요금이 OECD국가 가운데 두 번째로 저렴했다.
최근 부각된 결합판매 규제 공방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요금 인하 가능성과 경쟁 제한성 등 양면적 특성을 갖고 있는 결합판매에 대한 정부나 소비자단체의 감시 강화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합판매 규제 강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결합상품을 통한 사업자 간 경쟁이 이제야 첫발을 떼고 있는 중요한 시점이다.
특히 결합에 따른 단순 요금 절감을 넘어 결합상품을 통한 사업자 간 요금 경쟁 촉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시점에서 결합판매 규제가 강화된다면 이제 막 시작된 결합상품을 통한 요금 경쟁이 위축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정책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은 경쟁이며, 이를 통한 이용자 후생이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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