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업인을 교도소 담장 위에 세운 사회

입력 2015-07-19 20:40  

"추경을 편성할 정도로 침체된 경제…'과잉범죄화'에 발목잡힌 기업인들
경영 일선서 대형 투자 결정하고 경제 살려 일자리 창출 기회 줘야"

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 교수·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지난 13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사면의사를 밝혔다. “사면을 통해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새기고 국가 발전과 국민 대통합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사면이 공론화되면서 사면 범위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새누리당은 국가 발전과 국민 대통합을 위해 ‘통 큰 대사면’을 건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제계 인사들도 포함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사면에 재벌 총수들이 배제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진정한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 대통합은 재벌 총수 등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을 사면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역대 정부의 기업인을 제외한 유력인사의 사면을 복기해 보자. 노태우 정부에선 5공 비리혐의로 수감 중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를 사면했다. 김대중 정부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를,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 김홍업·홍걸·홍일 씨를, 이명박 정부는 측근인 최시중 씨를 사면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공안사범들을 대규모로 사면조치했다. 지난 1월 내란선동죄로 대법원에 의해 징역 9년이 확정된 이석기 전 의원도 이때 풀려났다. 피붙이라 사면하고, 신세져서 풀어주고, 코드가 맞아 방면해 준 것이다.

기업인 사면을 놓고 ‘전부 아니면 전무’ 식으로 충돌할 일만은 아니다.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는 연 1.5% 저금리에서도 인위적 경기부양을 해야 할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3%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1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정부는 지난 9일 5조원 규모의 투자활성화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투자는 기업이 하는 것이다. 그룹 회장이 수감되면서 그룹의 투자프로젝트가 표류하고 있다. 기업인들이 경제 현장에서 열심히 뛰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더욱이 이재현 CJ 회장과 이호진 전 태광 회장은 병중에 있다. 최태원 SK 회장은 일찍이 피해 복구가 이뤄졌다.

차제에 기업인에 대한 형사처벌과 사면 간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기업인의 심기일전도 요구되지만, 문제는 대한민국의 법적 현실에 있다. 과잉입법에 따른 과잉범죄화로 많은 기업인들이 전과자로 전락하고 있다. 도덕적 비난으로 끝날 사안과 민사로 해결될 사안을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임죄는 민사로 해결해도 될 사안을 형사처벌하는 사례의 전형을 이룬다. 배임죄는 ‘임무를 저버려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다. 하지만 임무를 저버리지 않아도 기업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 한국적 현실에서 사업에 실패하면 배임죄로 피소되기 십상이다. 업무상 배임죄는 한국 독일 일본 정도에 있지만, 독일 일본에선 ‘경영상 판단’으로 볼 때는 적용하지 않는다. 배임죄 판단은 경영 판단의 원칙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면 분명 범죄다. 문제는 ‘사회적 법익’을 침해한 경우다. 한국은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고 피해 사실이 불명확하더라도 ‘인과관계 추정’ 규정을 둬 추상적 위험범으로 형사처벌하고 있다. ‘환경범죄의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그 사례다.

양벌규정도 과잉대응이다. 최고경영자에게 종업원의 행위에 대해 보증책임을 물어 형사처벌하고 있다. 양벌규정에 의한 형사책임은 과실이 없어도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는 ‘과실 없으면 책임 없다’는 민사법원칙은 물론이고 ‘과실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형사법원칙에도 반한다.

사법(私法)영역이 공법에 의해 급격히 침해되고 있다. 형사처벌의 적용 범위 확대가 사적자치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기본질서에 위해를 가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사적자치를 통제하는 국가의 형벌권 행사는 최소화돼야 한다. 기업인으로 하여금 교도소 담장 위를 걷게 한 것이 우리의 법제였다. 기업인의 준법의식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규율돼야 한다. 아니면 ‘가두고 풀어주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사면으로 법치주의 기반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 교수·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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