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요트 시대

입력 2015-07-21 20:32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뉴욕 금융가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맨해튼 남쪽 배터리 공원에 도착했을 때였다. 가이드가 정박 중인 멋진 보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세요. 저 배들이 바로 은행가와 주식중개인들의 요트랍니다.” 그러자 누군가 물었다. “그들의 고객 요트는 어디에 있나요?”

주식시장의 이면을 유쾌하게 풍자한 프레드 쉐드의 고전에 나오는 얘기다. 그는 ‘고객의 요트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책에서 고객의 이익보다 자신의 요트에 더 관심이 많은 금융인들의 모럴 해저드를 꼬집었다. 요트는 예나 지금이나 부의 상징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요트는 갑판 크기가 축구장 2개나 되고 선체 길이가 180m에 이른다고 한다. 가격은 약 2조원.

현대 요트의 기원은 네덜란드에서 찾는다. 영어로 요트(yacht)는 ‘추적선’이라는 뜻을 지닌 네덜란드어 야흐트(jaght)에서 왔다. 네덜란드가 1660년 영국 찰스 2세 즉위 때 선물한 수렵선 2척을 요트의 시초로 보는 견해가 많다. 요트는 용도에 따라 딩기(dinghy)와 크루저(cruiser)로 나눈다. 딩기는 엔진이나 선실 없이 바람의 힘으로 항해하는 1~3인용 세일링 요트다. 크루저는 갑판정과 거주시설, 항해계기 등을 ?煞?먼바다까지 항해하는 대형 요트다.

요트 경기는 영국에서 먼저 시작했다. 찰스 2세가 네덜란드로부터 받은 배로 동생과 템스강의 그리니치에서 그레이브센트까지(37㎞) 100파운드 상금을 걸고 레이스를 벌였다. 이후 요트 경기는 유럽과 미국으로 전파됐다. 가장 유명한 경기는 아메리카컵대회다. 초고가 크루저에 기상천외한 신소재를 동원해 첨단과학의 경연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리아컵, 이순신장군배, 부산수퍼컵 등 국제대회가 여럿 열린다.

국내에 요트가 들어온 것은 1930년대로 알려져 있다. 연희전문학교의 언더우드가 요트를 제작해 황해요트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한강에서 활동했다. 요즘은 일반인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요트를 즐길 수 있다. 남해·통영·여수 등의 요트학교들이 다양한 체험교실을 열고 있다. 정부는 거점형 마리나항만 사업대상지로 전남 여수 웅천, 경기 안산 방아머리, 충남 당진 왜목, 부산 운촌 등 4곳을 선정해 국제 수준으로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모두들 꿈꾸는 부의 상징 요트. 그러나 유지비가 만만치 않다. 세계 최대 요트의 관리비는 1년에 700억원이나 된다. 그래서 이런 우스갯소리도 나온 모양이다. “요트와 별장, 애인은 누구나 갖고 싶어하지만, 소유하는 그 순간부터 골이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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