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연금의 98%를 예금에 넣는 현실

입력 2015-07-2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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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길 증권부 기자 road@hankyung.com


[ 조재길 기자 ] 2005년 퇴직연금 제도가 시행된 뒤 전문가들의 예측과 정반대로 움직이는 통계가 있다. 원리금 보장상품의 투자 비중이다. 시중금리가 갈수록 떨어지는데도 예·적금과 같은 안전자산 비중은 2010년 88.5%에서 지난해 92.2%로 되레 높아졌다. 107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중 대부분이 연 2%대 금리에 묶여 있는 것이다.

특히 퇴직연금 가입 기업들이 직접 운용하는 확정급여(DB)형이 문제다. DB형 중 원리금 보장상품 비중은 98%에 육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 A사가 100억원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갖고 있다면 이 중 약 2억원만 실적배당형 상품에 굴리고 있다는 뜻이다. DB형 가입 기업들은 적립금을 굴려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할 경우 퇴직급여 충당금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 일부 대기업은 매년 부담해야 하는 충당금이 10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미국 호주 영국 등 선진국에선 퇴직연금의 절반 이상을 펀드에 넣고 있다. 변동성이 좀 있더라도 장기 투자 땐 시중금리를 이길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어서다.

당국은 이달 초 퇴직연금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DB형 가입사들은 이제 주식·사모펀드에 최대 70%까지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다. 종전엔 30%까지만 가능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서다. DB형 자산의 투자는 대부분 회사 내 재무·인사 담당자가 결정하는데, 전문성이 떨어지고 손실이 발생했을때 문책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금리가 다소 낮더라도 예·적금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란 얘기다. 한 증권사 임원은 “펀드의 장기 수익률이 아무리 좋더라도 단기 손실 때 해당 직원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선 최적의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법은 퇴직연금을 먼저 도입한 나라에서 찾을 수 있다. 기업 내 투자위원회 구성 및 투자원칙보고서(IPS) 작성 의무화다. 노사 및 투자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투자 책임을 지고, 매년 보고서를 발간하도록 하면 달라질 수 있다. 다만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관련 법안(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깨워야 한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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