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미래 공학인재 육성, '창의적 학습경험' 강화해야

입력 2015-07-23 20:45  

'한국의 스티브 잡스' 나오게 하려면

공부는 하루 1시간 미만…고차원 학습경험 태부족
상대평가로 협업문화 퇴색…글로벌 시대 고립 우려
학과 재편보다 '학습의 과정'이란 본질을 혁신해야

"엄정한 학사관리 목적의 상대평가는
협동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문화와 풍토를 조장한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배상훈 <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



21세기 들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을 들라면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를 꼽을 수 있다. 그들이 만든 스마트폰과 프로그램을 쓰지 않고서는 하루도 살아가기 어려울 정도다.

그들은 창조적 도전 정신과 혁신의 가치를 보여줬다. 창조경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것이다. 한국에서는 언제쯤 이런 인물들이 나올까. 이런 인재를 배출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답은 역시 교육에 있다.

두 사람 모두 대학을 중퇴했고 타고난 천재성을 기반으로 업적을 이뤘지만, 창조적 인재 양성과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데 교육의 힘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교육은 전 생애에 걸쳐 이뤄진다. 내용도 다양해서 한 분야를 가지고 모두를 얘기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창조경제의 맥락에서 ?때, 대학에서 이뤄지는 공학교육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공학이야말로 대학에서 창출한 지식과 기술을 실용화하고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최전선이다. 공학 인재의 경쟁력은 우리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에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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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성균관대 연구팀에서는 한국에서 이뤄지는 공학교육을 미국과 비교 분석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 대학 평가가 대학교육의 최종 결과와 성취에 관심을 뒀지만, 이 분석은 ‘학생들이 대학에서 무엇을 학습하고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학자들은 이를 ‘학습 경험(student engagement)’이라 하는데, 우리 사회가 그동안 결과에만 매달리고 때로는 과정을 소홀히 함으로써 기본 토대가 취약해진 사례가 많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접근이다. 과정을 들여다봄으로써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제대로 된 처방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과정을 중시하지 않는 교육

우선 한국의 공대생들은 미국 학생들보다 학습량이 적었다. 한국 학생들은 1주일에 1~5시간 정도 공부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미국 학생들은 10시간 이상 공부하는 학생이 많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고차원적인 학습 경험이다. 고차원적 학습이란 공부를 통해 얻은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서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다른 상황에 적용해 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경험을 말한다. 창의성과 혁신적 사고를 발휘하는 교육적 경험과 훈련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를 의미한다.

한국 학생들은 60점 기준(매우 자주)으로 중간 이하였다. 미국 공대생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입시 준비를 위해 암기와 이해 위주로 공부하는 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자기 생각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물었는데도 결과는 비슷했다. 이런 반성적(反省的)이고 통합적(統合的)인 학습 경험은 창의성 신장의 기초라는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학습한 내용에서 핵심 정보를 파악하고 이를 요약 정리하는 학습전략은 4학년의 경우 한국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을 앞섰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창의적이고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의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우리가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갖춘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대학에서의 학습 패턴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임기응변만 있고 창의성은 부재

창의성과 혁신적 사고는 협업을 통해 커진다. 우리 학생들은 어떨까. 친구들과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모르는 것은 서로 물어보고 설명해주는 경험을 물었더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1학년 때는 한국 학생들이 높은 수준이었지만, 4학년이 되면서 역전된 것이다.

오늘날 대학마다 엄정한 학사관리를 이유로 대부분 상대평가를 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협동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문화와 풍토가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한국 학생들의 협동적 학습 태도가 60점 기준으로 중간 이상임에도 고차원 학습 경험이 낮은 것은 큰 문제다. 그저 함께 모여 공부할 뿐이다. 서로의 관점을 배우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는 수준까지 이르지 못한다면 협동적 학습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다양성과 개방성의 학습 경험을 보면 아쉬움이 더 크다. 다른 민족이나 인종과 대화하거나 다른 경제적 수준, 종교, 정치적 관점을 가진 친구들과 의견을 나눈 경험이 심각하게 낮았다. 한국도 점차 다문화 사회가 되고, 글로벌 수준의 참여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는 물론 우리 학생들도 교환학생으로 나가서 글로벌 환경에서 배우고 체험하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 한국을 짊어질 인재들이 세계와 격리된 외딴 섬에서 자라는 꼴이 될 것이다.

대학생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는 존재는 역시 교수다. 한국 학생들은 교수들과 과제, 학업 성과, 진로 등을 논의하려고 만나는 빈도가 낮았다. 물론 이는 미국 대학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교수가 얼마나 잘 가르치는지에 대한 질문에 긍정적인 응답이 많았으나 미국 학생들에 비해서는 다소 낮은 수준이었다. 학업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교수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교수들이 체계적이고 창의적으로 가르친다는 인식이 많을 때 학생들은 교수를 존경하고 학업 성과도 높아진다.

교수와의 교감도 낮은 수준

창조경제를 이루기 위해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창조적 도전 정신과 개방적 마인드를 가진 글로벌 인재 없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당장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인재를 갖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교육을 하나씩 고쳐나가면 조만간 우리도 그런 인재를 배출할 수 있다. 취업률이나 평판과 같은 당장의 성과에만 집착하기보다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경험하는지를 진지하게 따져볼 때다. 몇 개의 학과를 재편하는 것이 참다운 대학 구조개혁은 아닐 것이다. 제대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도록 학습의 과정을 혁신하지 않고서는 외형만 손질하는 데 그칠 수 있다.

최근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 사업(ACE 사업) 등을 통해 많은 대학이 학부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세계적으로 고등교육이 대중화 단계로 접어들고 학생 만족이 대학의 핵심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미래의 주인공들이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경험하는지, 이제는 과정부터 튼튼하게 기본을 다질 때다.

배상훈 <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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