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기업 대주주인 국민연금
의결권 판단 주체 사안마다 달라
명확한 기준 세우라는 지적에도
복지부 "논의 덜 됐다" 뜸들이기
[ 서기열 기자 ] 올해 제3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열린 지난 29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지난해 기금운용 성과평가 등 상정된 공식 안건에 대한 논의가 끝나자 기금운용위원인 김경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이 발언 기회를 요청하고 나섰다. 그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에 대해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로 넘기지 않고 자체적으로 입장을 결정한 근거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이에 대해 “투자위원회에서 과반수가 찬성 뜻을 나타내 규정상 전문위로 넘길 필요가 없었다”고 답했다.
이날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논의가 길게 이어지진 않았으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어떤 안건을 전문위로 넘길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 국민연금기금 보유주식 의결권행사지침엔 ‘기금운용본부 내 투자위원회가 심의·의결하되 찬성 또는 반대하기 곤란한 안건은 전문위에 결정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찬반을 결정하기 ‘곤란한’ 안건이라는 모호한 기준 때문에 일선에서는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가 지난 10일 삼성물산 합병안에 독자적으로 찬성 뜻을 정하자 전문위가 반발했다. 전문위는 14일 회의를 소집해 6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위는 “선례 등에 비춰 전문위에 판단을 요청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며 “향후 논란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규정 개정 등 제도 개선을 하도록 기금운용위원회에 요청한다”고 밝혔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아직 의결권행사지침을 손질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침을 구체화할지 아직 입장 정리가 안 됐다”며 “매년 한 차례 의결권행사지침을 검토하는데 그때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에 이미 의결권행사지침 검토 회의가 열린 것을 감안하면 당장은 검토를 시작할 계획이 없다는 얘기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이후에도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들 기업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성사 여부에 캐스팅보트를 쥘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현 의결권행사지침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그때마다 의결권 판단을 누가 맡을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의결권행사전문위원장을 지낸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학장은 “의결권 행사 판단 주체를 결정하는 기준이 자의적”이라며 “투자위원회가 자체적으로 판단할지 전문위로 넘길지 결정하는 분명한 기 蔓?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기열 증권부 기자 phil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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