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구의 교육라운지] 공교육 '선행학습 허용'이 문제인 진짜 이유

입력 2015-08-05 11:23   수정 2015-08-06 09:15

사교육 뒤쫓아가는 공교육 꼴
심화학습으로 체질 변화 필요



교육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의 관심사입니다. 조기교육, 영재교육부터 초·중·고교, 대학, 평생교육까지 교육은 '보편적 복지' 문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계층과 지역간 교육 인프라와 정보의 격차가 존재합니다. 한경닷컴은 다양한 교육 문제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김봉구의 교육라운지'를 연재합니다. 입시를 비롯한 교육 전반의 이슈를 다룹니다. 교육 관련 칼럼과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Q&A 등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초·중·고교가 정규 교육과정 외에 운영하는 ‘방과후학교’에서 선행학습이 허용된다. 지난 3월 교육부가 입법예고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공교육정상화법) 일부개정안이 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데 따른 것이다.

작년 9월 시행된 공교육정상화법은 정규수업과 방과후학교 등 학교 교육과정에서의 선행학습을 전면 금지했다. 이번 개정안의 골자는 방과후학교에 한해 선행학습을 허용하는 것이다. 법 시행 1년이 채 안 돼 빗장을 풀었다. ‘사교육 팽창 방지’ 논리에서다. “방과후학교까지 선행교육을 금지하면 사교육비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교육 당국의 변(辯)이다.

기자는 교육부의 입법예고 당시 이렇게 걱정했다. “학교 정규수업 시간엔 선행학습을 금지하고 보충수업 시간엔 선행학습을 장려하는 꼴이 된다. 보충수업 시간에 방정식을 가르친 뒤 정규수업 시간엔 덧셈 뺄셈을 가르치는 모양새는 우습지 않을까.”(☞ 정규수업 안되고 보충수업 되는 '이상한' 선행학습)

그때의 우려가 이제 현실이 됐다. 공교육 대 사교육 구도로만 보다 보니 이상한 해법이 나왔다. 사교육 팽창 우려로 공교육에 선행학습을 허용하겠다는 건 본말이 전도됐다. 공교육을 제대로 하겠다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사교육 안 하게 공교육도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의미 있는 사교육 억제책인 것 같지도 않다. 공교육 틀 안에 있지만 방과후학교엔 사교육이 들어와 있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한 번 걸러진 사교육에 대해선 선행학습을 허용한다’는 셈이다. 이번 조치로 공교육의 근간인 정규수업은 되레 더 심각하게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주요 9개 대학 입학처장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유기환 한국외대 입학처장은 “교육 정책이 사교육 억제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교육이 억제되면 공교육이 정상화된다고 보는 것”이라며 “거꾸로 돼야 한다. 우선순위는 공교육 정상화, 그래서 결과적으로 사교육이 억제되는 방향이 맞다”고 지적했다.

지금 우리 교육에 필요한 건 선행학습 허용이 아니라 심화학습으로의 체질 변화다.

말장난 같지만 둘은 분명 다르다. 선행학습이 일정한 내용을 먼저, 빨리 배워 ‘입시 우위형 학생’을 만드는 것이라면 심화학습은 ‘창의적 사고형 인간’을 키우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수학의 정석’을 보는 건 선행학습의 고난이도 버전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심화학습은 아니다.

심화학습의 본질은 사고력과 문제해결능력이다. 논리(로직)를 익히고 과정(프로세스)을 경험하도록 해주는 게 핵심이다. 먼저, 빨리 배우는 것보다 깊게, 생각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앞서가는 해외 중·고교에선 학생들이 토론하고 논문을 쓰며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논문이나 프로젝트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다. 요는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현실의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을 체득한다는 것이다. 고교까지는 대입 준비, 이후엔 취업 준비로 대학 졸업 때까지 논문 한 편 안 쓰는 국내 교육과는 질적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형태의 교육, 즉 ‘과정의 교육’이 우리가 지향점으로 삼을 만한 심화학습 교육과정이다. 단순히 어려운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학생 만드는 게 심화학습은 아니란 말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이런 시도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몇몇 고교의 토론식 수업과 논문, 연구(리서치), 각종 프로젝트 등이 눈에 띈다. 다만 효과가 제한적이고 전체 시스템으로의 확산이 요원하다. 고교까지의 모든 것이 대입으로 귀결되는 탓이다.

과연 당국과 학교 교육의 철학과 역할은 무엇인가. 한계를 인정하고 선행학습을 따라가는 미봉책을 내놓는 걸까. 아니면 심화학습 커리큘럼으로의 체질 변화를 진지하게 고민해 구현하는 것일까. 후자가 교육의 책무이자 공교육이 살아나는 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어느 쪽이 꿈과 끼를 살린다는 박근혜 정부 교육 목표에 적합한지 판단해보면 답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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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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