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의 최대 화두는 노동 개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대국민 담화에서 “노동 개혁은 일자리”며 “노동 개혁 없이 청년들의 절망과 비정규직의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확산 일로다. 담화문 발표 이후 노·사·정 대표들의 비공개 회동과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의 업무 복귀가 이어졌다.
노·사·정의 향후 행보는 대화 재개에 방점이 두어지는 모양새다. 정부의 노동계에 대한 유화적 제스처가 그렇다. 김 위원장은 임금피크제 확산을 위한 취업규칙 개정과 저성과자 해고 문제는 지금까지 노사 자율로 해왔다고 말했다. 학자들의 의견임을 들어 가이드라인 제정 등 제도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했다. 제도화에 반대해온 노동계의 손을 들어주는 발언이다. 정부도 가이드라인 마련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을 비치고 있다.
기업경쟁력 제고 고민해야
정부는 지난 4월 노·사·정 대화가 결렬되자 세 갈래로 노동 개혁을 다뤄 오고 있다. 의견 접근을 이룬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등은 국회에서 입법화하고, 해고요건 완화와 취업규칙 변경 등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시행하며, 비정규직 상생 촉진 등 추가 논의 과제의 구체적 방안은 추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이드라인 제정은 담화 이후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셈이다.
대통령의 의지와 정부의 발 빠른 후속 조치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노·사·정 대화 재개에는 ‘2013년 5월’이 데자뷔로 아른거린다. 당시 ‘정년 60세법’ 국회 통과의 전제 조건으로 산업계와 주무 부처가 요구했던 임금피크제 도입 의무화는 무시됐다. 노동계 반발과 정치권의 포퓰리즘은 ‘도입 의무화’를 ‘임금 체계 개편을 포함한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구절로 전락시켰다. 노동 개혁 1차 대상인 임금피크제 문제는 이때 잉태됐다. 이런 과거를 잘 아는 산업계 노무담당자들이 작금의 동향을 놓고 ‘2013년 5월의 재현(再現)’을 우려하는 이유다.
‘노동 개혁=일자리’는 옳지만 저성장기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노동 개혁을 하려면 노사가 주고받는 카드가 있어야 한다. 최저임금이나 정년연장은 노측이 이미 얻은 결과물이다. 노측에 양보를 요구하려면 사측의 다른 카드가 필요하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파견제 기간제 등 비정규직 보호, 원·하청 구조개선 등이 카드로 등장할 것”이라며 “노동 개혁 비용의 대부분이 기업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했다. 좋은 일자리는 고용 여력이 커져야 가능한 만큼 노동 개혁을 기업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봐줘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실기 안 돼’ 공감대
‘2013년 5월 도돌이표’는 힘들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국민 정서상 포퓰리즘이 발붙일 여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다. 조선 철강 자동차 등 수출 대표 업종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해지면서 ‘더 이상 실기(失機)해선 안된다’는 공감대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청년층과 이들의 부모도 노동계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근로자가 전체의 7~8%임을 감안하면 노동 개혁 관철이 내년 총선에서 득이 될 것’이라는 여권의 셈법이나 “600만표가 날아가도 노동 개혁을 할 것”이라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은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금 필요한 것은 ‘2013년 5월’을 과거로만 존재하게 만드는 지혜다.
박기호 선임기자·좋은일터연구소장 kh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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