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지뢰

입력 2015-08-11 18:37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명나라 말기인 1642년 농민군 지도자 이자성이 송·금 시대 수도였던 카이펑(開封)을 포위했다. 그는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지뢰를 동원했다. 도화선이 기둥만큼 굵었다. 그러나 지축을 흔드는 폭발에도 성벽은 끄떡없었다. 오히려 강력한 후폭풍과 화염, 파편에 그의 병사들만 희생됐다.

지뢰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1277년 중국이 몽고군을 저지하기 위해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명나라 건문제(建文帝)도 1440년 지뢰로 연왕을 물리쳤다고 한다. 지뢰에 점화장치를 맨 처음 쓴 것은 명나라의 척계광(戚繼光)이었다. 근대에 와서는 러일전쟁과 1차 세계대전 이후 보편화됐다. 2차대전 때 전차가 발명되자 대전차용 지뢰도 나왔다.

예전에는 지뢰를 매설할 때 사람이 일일이 했다. 그러다 트럭이나 장갑차, 헬리콥터에 싣고 필요할 때 뿌리는 살포법을 활용했다. 물론 손으로 파 묻는 방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뢰로 인한 피해는 대부분 폭발 후에야 발견된다. 지뢰탐지기나 다른 정보로 사전에 알아도 제거작업이 복잡하고 위험한 데다 시간도 많이 걸려 다른 장애물보다 영향력이 크다.

지뢰는 적군과 아군, 민간인을 구분하지 못한다. 홍수나 폭痍?전투지역 밖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래서 가장 비인도적인 무기로 분류해 1996년 제네바회의에서 23개국이 지뢰 생산과 사용, 판매를 금지하기로 선언했다. 당시 유엔은 세계 60여개국에 약 1억1000만개의 지뢰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지금까지 4100만개 이상의 지뢰가 제거됐지만, 아직도 캄보디아나 콩고, 한국의 비무장지대에는 수많은 지뢰가 묻혀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는 ‘지뢰 생산 중단’을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2004년 이후에도 지뢰를 계속 만드는 나라가 북한과 러시아 등 10여개나 되는 것으로 국제기구들은 파악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대인지뢰는 완전살상용과 신체 일부를 해치는 일명 ‘발목지뢰’로 나뉜다. 원반·사각통·원통·상자형 등 모양도 다양하다.

이번에 비무장지대에서 우리 수색대를 덮친 상자형 목함지뢰(木函地雷)는 2차대전 때 소련이 개발했다. 북한에서는 나무상자에 ‘뜨로찔’이라고 표기한다. 이는 TNT를 뜻하는 러시아어의 북한식 용어다. 북한의 지뢰도발에 우리 군이 비상태세에 들어갔다. 주변 열강들의 파워 게임으로 가뜩이나 긴박한 국제 정세 속에서 남북 관계의 긴장까지 고조되고 있다. 그야말로 곳곳이 지뢰밭이다. 어디 비무장지대뿐이랴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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