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정 기자 ] 금융감독원이 경영권 분쟁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롯데그룹에 오는 17일까지 최대주주 공시를 보완·시정하라고 요구한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롯데그룹 계열사가 ‘최대주주 지분율, 대표자, 재무현황, 사업현황’을 기재하도록 한 기업공시 작성지침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롯데알미늄, 롯데로지스틱스의 최대주주인 L2투자회사의 대표자와 재무상황을 추가 공개하도록 요구했다. ‘롯데 사태’를 계기로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인 2200여개 기업의 최대주주 기재 현황도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금감원이 갑자기 완벽한 작성지침 준수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납득하기 힘든 점이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기업의 개별 상황을 고려해 지침을 강요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광윤사, L2투자회사, L3투자회사 등 실체를 알 수 없는 롯데그룹 최대주주들에 대한 공시문제는 이미 지난해 초 불거졌다. 롯데알미늄이 L2투자회사에 대한 지분 정보를 숨기기 위해 지분 12.9%를 보유한 호텔롯데를 최대주주로, 실제 단일 최대주주인 L2투자회사(지분율 34.9%)는 5% 이상 주주로 분류하는 식으로 ‘꼼수’를 부리자 일부 투자자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공시서식 작성기준에 따르면 사업보고서를 내는 회사는 최대주주와 최대주주의 지분율, 단일 최대주주의 개요를 정확하게 기재해야 한다.
금감원은 지난해 7월 행정지도를 통해 롯데알미늄이 최대주주를 L2투자회사로 정정하도록 요구해 바로잡았다. 하지만 롯데그룹이 L2투자회사의 주소 재무현황 사업현황 등만을 기재한 데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았다. “최대주주 정보에 대한 접근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하위 작성지침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가 이제 와서 롯데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에까지 법률상 의무사항이 아닌 공시 작성지침까지 엄격하게 준수하라고 나선 것은 조변석개(朝變夕改)에 가까운 ‘즉흥 행정’이다. 감독당국이 사회적 논란이 있는 곳에 감시의 눈길을 주고 문제를 바로잡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이처럼 시류에 끌려다니는 경우가 늘어나면 경박하다는 평가를 들을 수밖에 없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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