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문제로 한일관계 발목 잡혀선 안돼"
한·중·일 정상회담 계기로 양자회담 가능성
[ 장진모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그동안 경색된 한·일관계를 미래 지향적인 관계로 개선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비록 어려움이 많이 남아 있으나 이제 올바른 역사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할 때”라는 발언에 함축돼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종전 70주년 담화가 실망스럽고 한국 정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비판을 절제하면서 ‘미래’에 방점을 찍은 것은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관계 개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했다.
○아베 담화 전면 부정하지는 않아
박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일본 내각이 밝혀온 역사 인식은 한·일 관계를 지탱해온 근간”이라며 “그런 점에서 아베 담화는 우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아베 祺??담화에서 과거 침략 및 식민지 지배 등에 대해 직접 사죄하지 않고 ‘과거형 사죄’로 얼버무린 점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아베 담화 내용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았다. 박 대통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아베 총리가)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밝힌 점을 주목한다”고 말했다. 긍정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언급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공언을 일관되고 성의있는 행동으로 뒷받침해 이웃 나라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록 힘들지만 새로운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아베 담화에 대해 아쉽다면서도 ‘미래’를 언급한 것은 양국 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란 분석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과거사 문제로 한·일관계가 더 이상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는 게 박 대통령의 판단”이라고 했다. 역사문제는 원칙 대응하되 안보·경제·사회문화 분야에서는 협력을 적극 추진해나간다는 것이다.
○고립외교 탈피
박 대통령이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것은 대외환경이 고려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일 관계가 얼어붙어 있는 동안 미국과 일본은 올 상반기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으로 ‘신밀월시대’를 열었다. 미국은 과거사 문제로 발목잡혀 있는 한·일 관계에 피로감을 호소하 ?있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축인 ‘한·미·일 삼각공조’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과 일본은 과거사 문제와 별개로 양국 간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자칫 ‘한국 외교가 고립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의 미래 지향적인 대일 메시지를 계기로 하반기 한·일관계 개선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되는 것은 연내 성사될 것으로 전망되는 한·중·일 정상회담이다. 외교소식통들은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양자회담이 추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중·일 정상회담과 관련, 다음달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승전 70주년 기념행사가 주목된다. 박 대통령의 방중이 성사되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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