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입력 2015-08-17 16:14   수정 2015-09-09 17:37

오카다다카시



(김보영 문화부 기자)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고, 연애나 결혼은 부담스럽다. 인간관계는 두렵고 피곤하다. 하루하루 밀린 숙제하듯 사는 삶도 버거운데, 여행을 떠나는 것은 휴식이 아니라 또 다른 스트레스일 뿐이다. 요즘 젊은층에서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성격이다. 이성에게 관심이 없다는 점을 부각해 ‘초식남’, ‘건어물녀’라는 신조어로 부르기도 한다.

심리학 용어로는 ‘회피형 인간’이다. 상처에 민감하고 실패가 두려워 인생 자체가 ‘회피’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책임을 지는 일을 극도로 싫어한다. 지속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애정이 식어 버리기도 한다. 안정형 애착 성향을 보이는 이들에게 인간관계가 큰 부담이 아닌 것과 대조적이다.

오카다 다카시(岡田尊司) 오카다클리닉 원장 겸 야마가타대 객원교수는 이 같은 심리적 특징을 보이는 사람들을 집중 연구했다. 그가 일본에서 2013년 말 출간한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回避性愛着障害 きずなが稀薄な人たち)>(국내서는 지난 4월 발간)는 일본 아마존의 심리·아동의학 분야 1위 서적에 올랐다. 지난 2월에는 NHK의 ‘클로즈업 현대’에 ‘청소년 범죄와 애착 장애와의 관계’에 그의 애착 장애 이론이 소개되기도 했다. 그의 <엄마라는 병(母という病)>, <나는 상처를 가진 채 어른이 되었다(愛着障害)> 등의 저서는 일본에서 10만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일본에 ‘애착 장애 이론’ 신드롬을 일으킨 오카다 원장과 이메일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회피형 인간은 어떤 사람입니까.

“대인관계가 불안정하고 표면적인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거리를 둘 뿐 아니라 실패하거나 상처받을 것 같은 일을 최대한 피하려 하기 때문에 인생 자체가 위축되기 쉬운 사람들이죠.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 가운데서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겉보기에 사교적인 사람 가운데서도 꽤 많습니다.”

▷회피형 인간은 새로운 경험에 소극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여행이나 외출을 포함한 모든 낯선 경험에 소극적입니다. 새로운 경험이 주는 기쁨이 있다 해도 회피형 인간은 번거로움을 더 크게 느껴요. 오늘날처럼 인터넷으로 대부분의 일을 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밖으로 나갈 필요가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회피형 인간은 현 상황을 바꾸지 않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장기적으로 보면 그 사람의 잠재력을 죽이는 일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도 두드러집니다.

“회피형 인간 중에서도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자기애가 강한 유형입니다. 상처받는 것도 싫고, 외부 세계로 적극적으로 나가기도 싫지만 자신은 특별한 존재로 남아 있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거죠. 자신이 만든 작은 성 안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가족을 하인처럼 부리며 사는 경우도 많아요.”

▷사교성도 갖추고, 일도 잘 하는 이른바 ‘전문직 엘리트 회피형 인간’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애착관계에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살피려면 우선 ‘정말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떤지를 보면 됩니다. 회피형 인간은 쿨하고 스마트한 성격을 잘 살려 일에서 성공을 거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감능력이 약하기 때문에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는 데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일에서 벗어나면 친구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며칠 전에도 큰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상담하러 왔는데, 자신의 일에서는 성공했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많이 외롭다는 것이 상담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익이나 숫자로 얻을 수 없는 따뜻한 애착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가족이나 타인을 위해 시간을 쓰거나 도움을 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왜 회피형 인간이 늘어나고 있나요.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젊은층을 중심으로 정서적인 반응을 귀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 왔습니다. 드라이하고 쿨한 것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미디어도 영향을 일부 줬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기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애정과 따스함인데 근대화 이후 공업화와 더불어 사회가 극도로 복잡해지면서 애착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자 기기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자연스러워졌어요. 스킨십을 하고 얼굴을 마주보며 얘기할 기회는 앞으로 더 줄겠죠.”

▷회피형 인간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회피형 애착 성향은 그 사람의 인생을 곤란하게 만들 뿐 아니라 사회 유지에 방해가 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고 궁핍한 시대에도 혼인율이나 출산율은 높았어요. 당장 굶어 죽을 상황에 처해도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는 일이 필수적인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당시에는 많았기 때문이죠. 지금은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인류의 생존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개개인은 편안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어요.”

▷회피형 인간을 안정적 애착 관계로 이끄는 방법은.

“회피형 인간에게 ‘안전 기지’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사소한 일로도 쉽게 마음을 닫아 버리기 때문에 시간이 제법 걸리지만요. 상대방이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존재라고 확신하면 회피형 인간도 서서히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의 페이스를 추월하지 않는 정도로 차분히 따라가면 관계가 깊어집니다. ‘슬로 스타터(slow starter)’지만 한번 신뢰관계가 구축되면 오히려 오랫동안 굳건하게 관계가 유지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회피형 인간의 페이스를 존중하고 재촉하지 않는 것, 억지로 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인내심을 요하는 일 같습니다.

“회피형 인간은 자신이 먼저 상담을 요청하거나 도움을 청하기 힘들어 합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도 익숙하지 않고요. 표정이나 반응이 약하기 때문에 그를 지원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느끼는 게 없다’고 오해하기 쉬워요.”

▷일본 내에서 애착 장애가 주목받게 된 이유는.

“한 가지 坪括?‘학대’가 사회적 문제가 될 만큼 늘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믿어 의심치 않았던 부모의 애정이라는 것이 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할 수 있음을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부모-자식 관계에 대한 의혹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독친(毒親·독이 되는 부모)’이라는 말도 이때부터 나왔고요. 애착 장애 이론이 각광받게 된 배경입니다.”

▷개인적으로 애착 장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의료소년원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 끊임없이 자해하는 모습을 봤죠. 이들이 완전히 회복되려면 시스템보다도 지원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야 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가족과의 관계라는 것도요. 그런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애착 이론 연구를 시작했어요.”

▷신간 <인간 알레르기(人間アレルギ-)>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요.

“성격이 안 맞는 사람이 동료나 상사가 됐을 때, 처음에는 참아도 마치 알레르기 반응처럼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좋아서 결혼한 부부라도 사소하게 마음이 엇갈리는 일이 쌓여 가면서 어떤 선을 넘어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는 거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인데도 심리학적으로 명확하게 개념화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걸 연구해 보고 싶었습니다. 올 가을에는 형제 관계에 초점을 맞춘 심리학 서적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애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병원과 상담 센터 두 곳도 운영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도 ‘초식남’, ‘건어물녀’ 문제가 두드러집니다.

“한국도 일본 이상으로 빠르게 공업화, 근대화가 진행된 만큼 사람들의 애착 관계에 공백이 생겼을 거라 봐요. 한국은 일본의 실패를 교훈 삼아 부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허준’이나 ‘동이’, ‘해를 품은 달’ 등 한국 드라마 팬입니다. 캐릭터의 강한 의지,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아주 좋아요. 한국 드라마를 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끝)
/w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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