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도발→위기조성→보상' 고리 끊는다
[ 정종태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판문점에서 진행 중인 남북 고위급 접촉과 관련, “이번 회담의 성격은 현 사태를 야기한 북한의 지뢰 도발 등 도발 행위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매번 반복되는 도발과 불안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없다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고 확성기 방송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사흘째 판문점에서 열리고 있는 고위급 당국자 접촉과 관련, 협상의 구체적인 입장과 원칙을 제시한 것이라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과거처럼 북한이 도발로 위기를 조성한 뒤 일시적으로 대화 분위기가 형성되면 사과 없이 적당히 타협해 보상을 받아내고, 이를 노려 다시 도발하는 도발→위기 조성→보상→도발의 ‘악순환 고리’를 끊겠다는 대북 메시지를 보여준 ?rdquo;이라고 말했다.
북측의 사과 및 재발 방지 약속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엄중한 인식은 지난 22일부터 진통을 거듭하면서 이어지고 있는 남북 고위급 접촉 협상에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그동안 대화와 교류협력을 대북 원칙으로 착각하고 북한의 도발에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했던 것이 북한의 악습을 고착화한 요인이었다”며 “박 대통령의 타협 없는 원칙 대응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을지훈련 기간 보여준 강력한 한·미동맹의 군사 위력도 북한에는 커다란 압박이 됐다는 평가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일 북한의 연천 포격 도발에 “미국은 한국과 함께 한반도를 방어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밝혔다. 이어 사태가 악화할 경우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등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 전문가들은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는 대북 군사적 압박 수위를 결정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변수가 터질 때마다 양쪽으로 갈라졌던 여론이 이번에는 다르게 형성된 점도 정부와 군 당국의 단호한 대응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 특히 분단 상황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2030세대’에서 “더 이상 북한에 끌려다녀선 안 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전선으로 나가 싸우겠다”는 댓글과 이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줄을 잇기도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2030세대는 같은 또래인 북한의 젊은 지도자가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 반감이 큰 것 같다”며 “세대를 불문하고 확고하게 뭉친 안보의식이야말로 우리가 남북관계를 주도하게 하는 무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북한의 일방적인 도발에 이은 기습적인 남북 접촉 제의에 우리 정부가 쉽게 응한 것은 원칙을 저버린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북한 전문가는 “한쪽에선 대화를 제의해 놓고 다른 쪽에선 또 다른 도발을 준비 중인 북한의 모습은 전형적인 ‘치고빠지기 수법’”이라며 “도발에 대한 분명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없다면 대화 중단을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