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잡힌 국책은행 지휘체계 통합
매몰비용 잊고 구조조정 나서야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
역대 정부 출범 초기의 공공기관 인사는 의외성이 많았다. 박근혜 정부의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인사도 그렇다. 과거 정부가 퇴임 경제관료 지정석처럼 운영했는데 이번에는 특정 대학 출신 경제학자가 임명됐다. 경제관료 출신은 위기 수습 능력에서는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다. 두 은행 모두 조선업 부실로 심각한 위기라는 점에서 경제학자로 수장을 교체한 것은 의외다. 대수술이 필요한 외상환자 주치의를 외과에서 내과로 바꾼 모양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과열 양상을 보였던 조선 경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냉각됐다. 2010년에는 성동조선이, 2013년에는 STX조선이 은행 관리로 넘어갔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도 적자다. 올 2분기에 대형 3사가 기록한 영업손실은 4조8000억원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얼마 못가 시가총액이 모두 날아간다.
수출입은행은 ‘대외거래 지원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끄는 공적 수출신용기관’을 표방한다. 그러나 조선업 호황 시절에 선수금환급보증(RG) 수수료의 달콤함에 빠져 보증을 남발했다가 덤터기를 썼다. 지금은 대출금 중 조선업 비중이 압도적이어서 그냥 조선(造船)은행이다. 자본총액이 10조원 미만인데 성동조선에 물린 돈만 2조6000억원이다. 삼성중공업에 위탁경영을 애걸하지만 ‘자기 코가 석자’인데 제대로 신경 쓸지 걱정이다.
더 큰 화근은 대우조선이다. 삼성중공업이 생존을 위해 삼성엔지니어링과 합병까지 기획하고, 현대중공업이 3조원 넘는 영업손실 공표와 함께 수뇌부 전원을 교체했던 2014년에도 대우조선은 독야청청 건전성을 뽐내는 재무제표를 내놨다. 그러나 올 상반기에 부실을 자백했고 감사인도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에 대한 의문’을 강조한 보고서를 발행했다. 신규 선박 수주에 필수조건인 RG 받기도 어려워져 산업은행·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가 30%씩 책임지고 민간은행이 나머지 10%를 기존 보증비율로 안분하는 구제보증 상황이다. 발주처가 좋아할 리 없고 제값 받기는 틀렸다. 대우조선에 대한 수출입은행 대출금은 12조4000억원으로 자본총액보다 많다. 지분 31.5%를 보유한 최대주주 산업은행의 대출금은 4조1000억원, 농협은 1조6000억원이고 민간은행은 모두 1조원 미만이다.
조선업 위기는 중국의 급속한 시설 확장에서 초래됐다. 중국 동부연안지역 성(省)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경쟁적으로 조선업에 뛰어들었다. 2008년에 20%였던 선박 건조능력 점유율이 2013년에는 40%까지 급증했다. 국제경제 동반 침체로 물동량은 줄었는데 건조능력은 급증해 선박 수주가격을 끌어내렸다. 대형 3사 모두 해양플랜트로 활로를 찾으려다 낭패를 당했다. 공사비 추계 당시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돼 설계 변경과 공사 지연으로 대규모 손실이 났다. 셰일가스 개발이 앞당겨져 유가가 폭락함으로써 후속 공사도 기대난망이다.
조선소 시설 투자비는 전형적인 매몰원가(sunk cost)다. 이미 지출했고 회수가 불가능해 아깝지만 잊어야 한다. 시설이 바닷가에 있어 재활용도 어렵고 원상복구 비용도 비싸다. 깊은 바다에 빠진 고가 선박처럼 영어 원문 그대로 침몰된 원가다.
성동조선·STX조선·대우조선 대출채권 대부분은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몫이다. 수출입은행은 정부가 70%, 한국은행과 산업은행이 15%씩 출자했으며 산업은행은 전액 정부 출자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끌려다니면 국가재정은 거덜난다. 수익성 없는 도크를 따로 붙들고 위탁경영자를 찾느라 허비할 겨를이 없다. 문제되는 조선소를 같이 놓고 잉여시설과 인원에 대한 생산성을 평가해 살릴 부분과 폐기할 부분을 가려내야 한다. RG와 일반채권 간의 손실 부담 문제는 복잡하다. RG가 대부분인 수출입은행이 과도한 부담을 떠안았을 가능성이 크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지휘체계를 통합하고 구조조정 경험과 성과가 풍부한 인사를 찾아 긴급수술을 맡겨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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