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이겨낸 정원희 씨, 서울대 졸업식 대표 연설 "불가능 속에서도 가능함을 증명하자"

세상의 변화를 기다리기보다
내 스스로 일을 해내는 게 중요


[ 오형주 기자 ] “저의 삶을 지탱한 힘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28일 오전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 대표 연설을 맡은 정원희 씨(25·사진)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불가능 속에서도 가능함을 증명해 보이는 삶을 살아가자”며 이렇게 말했다.

정씨는 이날 휠체어를 탄 채로 연단에 올랐다. 서울대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한 것은 정씨가 처음이다.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11개월 만에 뇌성마비 2급 판정을 받아 지금까지 평생을 휠체어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는 중증 장애인이다. 학창시절 신체적 어려움 속에서도 중·고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2009년 서울대 경영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는 다문화 가정에서의 봉사활동, 서울시립아동병원 보조교사에 이어 장애문화예술 단체 ‘짓’을 창립해 연극배우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는 “처음 대학에 입학해서는 너무나 거대한 세상에 맞닥뜨려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기도 했다”며 “이후 받기만 했던 지난 삶을 돌아보며 내가 세상에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보다시피 저는 이렇게 휠체어를 타고 있고, 세상은 저 같은 사람을 장애인으로 정의한다”며 “하지만 신체의 특수성 때문에 조금은 다른 눈높이에서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고, 삶은 더욱 풍성해졌다”고 했다.

그는 졸업생들에게 “‘삼포세대’ ‘달관세대’ ‘헬조선’ 등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어두운) 뉴스는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만 어려운 순간마다 우리가 모교에서 함께한 기억을 떠올리며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다잡자”고 당부했다.

졸업식을 마친 뒤 기자와 만난 정씨는 연설에서 ‘가능성’을 강조한 배경에 대해 “세상이 변하기를 원하며 마냥 기다리기보다 우선은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장애가 있는 어린 학생들이 장애를 너무 큰 장벽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장애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되, 그 한계 안에서 자신이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다보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씨는 지난 4월 한국투자공사(KIC)에 입사해 현재 주식운용실에서 리서치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향후 해외투자 전문가로 성장해 많은 이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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