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악화 → 고용 축소 → 노사 분규 '악순환'
[ 이심기 기자 ] 중국의 ‘재고 거품’이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 7% 성장을 예상하고 생산을 늘린 기업들이 소비 부진으로 인해 고스란히 쌓인 재고 역풍 때문에 수익성 악화→고용 축소→노사분규 급증의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예상보다 낮은 성장률에 타격
2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엘리베이터업체 오티스는 지난해 말 중국 매출이 올해 5%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건설경기 침체로 상반기 매출이 10%나 감소했다. 성장률 예측 실패는 재고 급증으로 이어졌다. 오티스에 부품을 공급하는 UTC테크놀로지도 최근 투자자에게 중국사업이 부진한 것은 오티스 매출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 들어 7월까지 쌓인 중국의 자동차 재고가 144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67% 늘었다고 보도했다. 도요타자동차는 중국 내 판매 부진으로 재고가 쌓이면서 일본에서의 수출 물량이 48% 감소했다. 현대자동차도 7월 중국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32% 감소한 5만4160대에 그쳤으며, 판매 부진에 시달리는 일본의 마쓰다자동차는 중국에서의 가격전쟁을 경고했다.
세계 최대 PC 제조업체인 중국 레노버는 2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51% 줄면서 3299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명품업체 프라다의 상반기 중국 매출도 정부 부패와 사치척결 정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 감소했다.
월가의 한 컨설팅회사는 “중국 내 팔리지 않고 쌓여 있는 재고가 만리장성을 쌓을 정도로 많다는 의미에서 ‘재고의 만리장성’이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생산활동이 위축되고, 고용 감소와 내수 부진으로 다시 이어지면서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조업 부진, 재고 거품 탓
최근 발표한 중국의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기준선인 50을 밑도는 49.7에 그치며 2012년 8월 이후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도 기업의 재고 거품 영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업이 재고부담 증가에 따른 수익성 악화에 대응해 임금 삭감과 인원 감축에 나서면서 노사분규도 급증하고 있다. 중국 노동회보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노사분규 건수는 1390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539건과 비교해 158% 급증했다. 2013년의 390건과 비교하면 3.5배에 달할 정도로 중국 내 경영환경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최근 유럽상공회의소 조사 결과 중국에 투자한 유럽기업 중 올해 고용과 구매를 줄이는 등 경비 절감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힌 업체가 지난해 24%에서 올해 39%로 높아졌다.
수요를 무시하고 건설한 주택과 사무실 등 부동산 재고 거품도 심각한 상황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사무실 공실률은 전년 동기보다 4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아파트 등 주택용 건물 공실률도 18% 늘었다. 외신은 대도시의 주택 판매는 중국 정부의 부동산 대책으로 다소 회복되고 있지만 중소도시의 부동산 경기 회복은 여전히 더디다고 전했다.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의 레이 달리오 최고경영자(CEO)는 FT에 “중국 통화정책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돈을 풀더라도 소비 증대로 이어지는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며 “대규모 재정지출 정책을 유지하면서 세금 감면 등의 조세정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재고 거품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현지시간) 미국석유협회(API)가 집계한 주간 원유재고량은 1주일 전보다 760만배럴 증가한 4569만배럴에 달했다. 주간 기준 4월 초 이후 5개월 만의 최대 증가폭이다. 이 영향으로 이날 서부텍사스원유(WTI) 10월 선물은 뉴욕상품거래소에서 7.8% 급락한 배럴당 45.4달러에 거래됐다. 전날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8월 시카고 PMI가 54.4로 예상치를 밑돈 것도 재고량이 지난해 11월 이후 9개월 만에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신규 주문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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