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부다페스트의 절망

입력 2015-09-04 18:09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동서를 잇는 교통 중심지다. 서유럽과 남유럽, 동유럽을 잇는 기차역이 따로 있다. 문명이 왕래하는 길목이기도 했다. 도시의 주인도 수시로 바뀌었다. 중세에는 몽골인이 점령했으며 16세기 오스만제국 시절 때는 튀르크인이 몰려들었다. 헝가리인으로 불리는 마자르인이 부다페스트에 대거 유입된 것은 19세기 초반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들어서면서다. 이후 부다페스트는 파리와 비견되는 유럽의 중심도시로 급성장했다.

이 때 유대인도 많이 들어왔다. 1900년에는 부다페스트 인구의 23.6%를 유대인이 차지했다. 게오르크 루카치나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 시오니즘 운동을 펼친 테오도르 헤르츨이 대표적인 부다페스트 출신 유대인이다. 누구보다 부다페스트에 강한 애정을 가진 유대인은 조지 소로스다. 그는 태어나서 17세까지 부다페스트에 살았다. 그는 수천억원을 들여 중부유럽대학(Central Europe University)을 설립하는 등 각종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헝가리의 웬만한 정치가들은 소로스재단의 장학생들이다.

20세기 들어선 유럽으로 가려는 이민자나 난민들이 거쳐가는 도시였다. 프랑스나 독일로 가는 터키 이주자들도 부다페스트를 거쳤고, 옛 소련 지배하에 있었던 동구권 국가들 역시 이 도시를 이주 경로로 활용했다. 독일 통합 이전에는 서독으로 가려는 동독 난민들도 부다페스트를 거쳤다. 수만명의 동독인들이 헝가리로 들어와서 다시 발칸을 통해 서독이나 다른 국가로 이주했다. 이로 인해 헝가리와 동독이 ‘동독인 난민 문제’로 충돌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 부다페스트는 서유럽으로 가려는 시리아나 중동의 난민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큰 혼란을 빚고 있다. 이들은 독일행을 원하지만 헝가리는 여권과 비자를 가진 사람들만 국제선 열차 탑승을 허용하고 있어서다. 기차역과 지하철역은 거대한 난민촌으로 변하고 있다. 난민들은 절망감이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유럽 시민들이 난민을 적극 수용하자는 쪽으로 여론을 모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세살배기 시리아 난민 어린이가 터키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것도 유럽 여론을 움직이고 있다. 부다페스트 기차역에서 시리아 여성 두 명이 여자아이를 출산했다고 한다. 이 아이들에게 시리아어로 각각 쉼터와 희망을 뜻하는 사단과 셈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자유와 평화를 위한 희망이다. 부다페스트에는 지금 희망의 싹도 자라나고 있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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