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1조1300억 '헛돈'
기초연금 받는 노인에 장수수당 지급 68곳
국가장학금 받는 학생 학비 또 지원 23곳
우후죽순 사업 혼란
수혜자 간 형평성 논란…복지재정사업 정비 시급
[ 고은이 기자 ]
지방자치단체 복지사업 네 개 중 한 개는 중앙부처와 유사·중복 사업인 것으로 조사됐다. 기초연금과 비슷한 목적으로 노인에게 ‘장수수당’을 지급하고 있는 지자체가 68곳이나 됐다. 국가장학금이나 교육급여와 비슷한 형태로 학비를 지원하고 있는 곳은 23곳에 달했다. 복지 대상자의 혼란을 막고 복지재정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중앙-지방사업의 연계·조정을 강화하고 지자체 사업 중 일부는 정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사 사업에 1조1300억원
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자체 자체 복지사업 5892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중 1593개가 중앙정부 사업과 비슷하거나 중복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체 지자체 복지사업 중 27.0%가 유사·중복 사업이다.
예산으로 따져보면 豁?지자체 복지 예산의 17.5%가 이 같은 유사 사업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규모만 연간 1조1345억원에 달한다.
주거부문 복지의 유사율이 가장 높았다. 지자체 주거부문 복지사업 153개 중 132개(86.2%)에서 중앙정부 사업과 유사성이 발견됐다. 주거부문 지자체 예산 601억원 중 557억원(92.7%)이 유사 사업에 쓰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표적인 게 주거비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사업이다. 12개 지자체에서 시행 중이지만 국토교통부의 주거급여 사업과 내용이 거의 같은 것으로 분석됐다. 보사연 관계자는 “최근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개편되면서 주거급여 대상이 확대됐는데 이와 상관없이 자체 주거비 지원 제도를 계속 운영하고 있는 지자체가 아직 많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같은 사회보험의 본인부담금을 지원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 전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건보료 지원 사업 수는 154개나 됐다. 하지만 대부분이 보건복지부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지원하고 있는 의료급여 제도와 크게 다른 점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노인장기요양보험료를 지원하는 지자체도 11곳 있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미 저소득층 지원사업을 꾸리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사회보험 부담금을 따로 지원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초연금과 비슷한 장수수당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지자체는 68곳,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바우처 사업과 비슷한 난방지원 사업은 38곳, 국가장학금·교육급여와 비슷한 학비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곳은 23곳이었다.
○“복지재정 통제 강화해야”
지자체 복지사업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복지 대상자의 혼란과 불편도 증가하고 있다. 수혜자 간 형평성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어느 지역에 살면 받는 복지 서비스를 이사한 뒤에는 받지 못하는 식이다. 과도한 행정부담으로도 이어진다. 지자체별로 수행하고 있는 복지사업만 평균 50개에 달한다.
강혜규 보사연 연구위원은 “지자체에서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보충적인 서비스 외에도 전시성·선심성 사업을 시작하는 사례가 많다”며 “지금처럼 국가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복지사업을 위해서는 효율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법을 개정해 중앙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지자체 복지재정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복지재정 전문가는 “지방재정법을 정비해 지자체가 복지재정에 대한 적절한 배분과 책임 있는 집행을 할 수 있게 체계화하고 중앙정부는 이를 적절히 통제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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