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IFA에 신제품이 숨어 버린 이유

입력 2015-09-06 18:01  

베를린=정지은 산업부 기자 jeong@hankyung.com


[ 정지은 기자 ] “특별한 게 보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게 없어요.”

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가전박람회(IFA)를 둘러본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비단 윤 사장만이 아니다. 안규문 밀레코리아 사장 역시 “올해 전시에는 볼 만한 신제품은 없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IFA는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전자업체들이 참가해 TV, 세탁기, 냉장고 등 최신 가전제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하지만 별다른 신제품이 나오지 않았다. 관람객들 사이에선 “2~3년 뒤 나올 만한 가전 신제품을 보는 재미가 없어 아쉽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6~7년 전부터 IFA에 참가했다는 한 미국인은 “지난해부터 신제품이 꽁꽁 숨어 버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유가 있었다. 왜 전시장에 새로운 제품이 없느냐는 질문에 윤 사장은 “2~3년 뒤 나올 제품을 이곳에 선보이면 바로 빼앗겨 버린다”며 “경쟁 업체 직원들이 와서 동영상으로 찍어 가거나 심지어는 뒤집어 보고 간다”고 말했다. 신제품 베끼기가 심각해 공개된 장소에 2~3년 뒤 제품을 내놓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주요 업체들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전시 부스 외에 별도 미팅룸을 만들어 미래형 제품을 놔둔다. 전시장 인근의 별도 공간에 신제품을 숨겨두고 믿을 만한 파트너에게만 보여준다.

전시장을 둘러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전자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가전전시회(CES)에서 공개했던 세탁기 ‘크리스털 블루 도어’를 흉내낸 제품들이 수두룩했다. 윤 사장은 “우리가 트렌드세터다 보니 세탁기 문을 우리 것처럼 흉내낸 곳이 많다”고 말했다. LG전자 세탁기 냉장고와 비슷한 형태의 제품을 내놓은 업체도 많았다.

중국 스카이웍스의 부스에선 일본인 두 명이 TV 뒷면에 얼굴을 거의 들이밀다시피 하며 제품을 살펴보다가 직원의 제지를 받고 쫓겨나는 일도 벌어졌다. 미래를 그릴 신제품을 개발하고도 전시장에 내놓을 수 없는 가전업체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베를린=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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