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 정례회의 전락
장관 임명 늦고 청문회 길어
박근혜 정부 불참률 19%…차관조차도 불참 8회나
'유구무언' 장관들
차관 참석땐 나서기 꺼려 심도 있는 의제 토론 안돼
12차례 회의중 토론 4회뿐
[ 강경민 기자 ] 대한민국 국무회의는 미국식 대통령제의 단순 자문기관인 장관회의와 영국식 의원내각제의 의결기관인 각의(閣議)의 성격을 혼합한 독특한 형태다.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한 심의·의결·자문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기구로,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만큼 강력한 권위를 가진다. 그러나 국가 최고기구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운영되면서 ‘통과의례 회의’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무회의 격 떨어뜨리는 장관
국무회의 규정 제2조는 “국무회의는 국가의 중요 정책이 전 정부적 차원에서 충분히 심의될 수 있도록 운영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각 부처 차관이 장관을 대신해 출석하는 건 가능하지만 표결권을 주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 ?장관 불참률이 가장 높은 부처는 해양수산부로, 불참률은 44.6%에 달한다. 2013년 3월부터 이달 1일까지 열린 139차례 국무회의 중 장관이 62차례 불참했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이주영 전 해수부 장관이 사고 수습차 진도 팽목항에 136일 동안 머물면서 국무회의에 20여차례 불참한 데 따른 것이다.
해수부에 이어 △외교부(32.4%) △산업통상자원부(26.6%) △국토교통부(24.5%) 등의 순으로 장관 불참률이 높았다.
박근혜 정부의 장관 불참률은 연평균 19.1%로,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3년간 불참률(12.6%)을 웃돈다. 행자부 고위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장관 공석에 따른 공백 기간과 인사청문회가 길어지면서 국무위원들의 참석률이 낮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 기간에 국가 최고기구인 국무회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장관뿐 아니라 해당 부처 차관까지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경우도 8차례에 달했다.
○국무회의서 침묵하는 장관들
국무회의는 대통령과 총리, 각 부처 장관 등 20명의 국무위원 외에도 다수의 배석자가 참석한다. 대통령 비서실장,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 법제처장, 인사혁신처장 등은 표결권이 없는 배석자다. 배석자는 모두 15명 내외다.
전직 장관 출신인 A씨는 “각 부처 장관들이 모두 모이면 주요 현안 및 법률안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이 가능하다”며 “하지만 차관이 참석하면 깊이 있는 토론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현직 B차관은 “부처 현안에 대해 토의하고 싶어도 총리와 장관들 앞에서 차관이 나서는 건 쉽지 않 ?rdquo;고 했다. 한 국무위원은 “배석자가 많다 보니 주요 안건에 반대하고 싶어도 공무원 사회에 금세 소문이 날 수 있어 장관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게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직 C차관은 “대통령 앞에서 부처 간 다른 의견이 나오면 협업이 안 된다는 모양새를 심어줄까봐 장관들도 쉽사리 나서지 못한다”며 “차관이 참석하면 실무자가 건네준 보고서를 그대로 읽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28일부터 7월3일까지 열린 12차례 회의에서 부처 장관 간 토론이 오간 건 총 네 차례.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에너지법 시행령과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두 차례 지적했다. 나머지 두 차례는 배석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세월호특별법 및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관련 정부 대처를 지적한 것이다. 당시 박 시장의 지적에 대해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이 잇달아 반박하면서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다.
그 외 정부의 주요 정책 현안 및 법률안 심의에선 토론이 전혀 없었다. 국무회의 말미 각 부처 보고사항 시간에만 장관들은 입을 열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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