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가 판매한 말레이시아 공기업 채권…국내 연기금·보험사 대규모 평가손실

입력 2015-09-07 00:19   수정 2015-09-07 08:26

총리 '뇌물 스캔들'에
3차 발행 채권값 20% 급락
기관투자자들 전전긍긍



[ 유창재/고경봉 기자 ] 2013년 말레이시아 개발유한공사(1 Malaysia Development Berhad·1MDB) 채권에 투자했던 국내 연기금, 보험사,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들이 대규모 평가 손실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채권 발행을 주도한 말레이시아 총리가 뇌물 스캔들에 휘말린 데다 최근 중국 경기침체와 증권시장 불안이 겹치면서 채권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보증한 공기업 채권인 만큼 당장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하지만 파장이 커지면 대규모 지급불능 사태가 생길 수 있는 만큼 면밀하게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13년 IMDB가 발행하고 골드만삭스가 국내에 판매한 총 5억4000만달러 규모의 3차 채권 가격이 최근 투자 원금 대비 20%가량 떨어졌다. 채권 액면가 대비 매수 호가는 80%, 매도 호가는 82%에 형성된 상태다. 1MDB는 말레이시아 국영 개발회사로, 국내외 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으로 발전소 건설, 부동산 개발사업 등에 투자한다. 하지만 부실 경영으로 최근 부채 규모가 110억달러까지 늘어난 것으로 외신들은 보도하고 있다.

1MDB는 2012~2013년 골드만삭스를 통해 3차에 걸쳐 채권을 발행했다. 1~2차에 각 17억5000만달러, 3차에 30억달러를 발행했다. 한국 기관들은 2~3차 채권에 10억달러(약 1조원)를 투자했다. 1, 2차 채권은 별다른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 아부다비 국부펀드인 ICIP가 보증해 신용등급 AA를 받았으며 현재 액면가 대비 100% 이상에서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3차 채권은 ICIP 보증 없이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가 ‘신용보강(letter of support)’ 조항에 서명했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사실상 말레이시아 정부가 보증한 것”이라는 국내외 로펌의 자문을 받아 이 채권을 사들였다. 하지만 나집 총리가 부패 혐의로 야당의 공격을 받고 반부패위원회가 1MDB와의 연관성을 조사하고 나서면서 이 3차 채권 가격이 10% 이상 떨어졌고, 중국 증시 급락사태가 불거지면서 20% 선까지 하락폭이 늘었다. 일부 투자자는 나집 총리가 약속한 정부 지원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3차 채권이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인기를 끌었던 요인은 투자 당시 만기가 비슷한 말레이시아 국채 금리가 연 3%였는데 비해 1MDB 채권은 연 4.4%였기 때문이다. 10여개 기관 중 한국투자공사(KIC), KB손해보험, 대우증권 등은 가격이 하락하기 전에 모두 처분해 현재 잔액은 3억달러 정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20%의 손실이 현실화된다고 가정하면 국내 연기금과 보험사들의 남은 채권 손실은 6000만달러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투자사 관계자들은 “신흥국 채권은 변동성이 높기 때문에 가격이 떨어졌다고 평가 손실을 확정된 손실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강변하고 있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나집 총리의 ‘신용보강’ 약속은 국내외 로펌들로부터 법적 구속력이 있다는 해석을 받았다”며 “채권이 부도나면 영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돼있어 원금 손실 우려는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대부분 기관은 이 채권을 10년 만기 때까지 보유하는 ‘만기보유계정’에 넣어놨기 때문에 시가로 평가해 손실을 반영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유창재/고경봉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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