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영의 벌어야 사는 사람들②-2] "돈 없이도 행복하다는 말은 거짓이다"

입력 2015-09-07 14:05   수정 2015-09-07 15:50

[ 정현영 기자 ] 그들은 돈을 벌어야 했다. 먹고살기 위해 그래야 했다. '돈(money)보다 꿈(dream)이 먼저'라고 외치던 젊은 시절의 노래는 다시 들을 수 없다. 벌어야 사는 시대는 바빠야 정상이다. '안녕?'이 아니라 '바쁘지?'로 안부를 묻는다. 시인들은 가난이 슬픔이고 슬픔을 고통으로 느낀다고 한탄한다. 서울 여의도 자본시장의 복판에 서서 물어봤다. 당신한테 돈은 무엇입니까.



☞ [정현영의 벌어야 사는 사람들②-1] "평범하게 살기 싫어서 돈이다"…10년만에 '취준생' 된 30대 애널리스트

"나에게 돈은 어차피 잉여(쓰고 난 나머지)다.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어서다. 무엇보다 돈 없이도 행복하다는 말은 거짓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이미 증명됐다고 본다."

▶ 만 10년 동안 증권사 애널리스트(기업분석가)로 살았다. 돈에 대한 생각을 말해달라.

"앞으로 10년을 더 살아보면 윤곽을 그려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돈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19년 전과 비교해도 변함없는 건 '평범한 내 인생을 바꿔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돈이란 생각이다. 10년 이상 여의도에서 증권사 애널리스트(기업분석가)로 일하면서 확실히 눈으로 본 건 일정수준 이상,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돈은 멀쩡한 이성(理性)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때 너무 많은 돈은 복(福)이 아니라 화(禍)였다. 내가 본 돈은 그랬다."

▶ 그래서 자식에게 돈은 물려줄 수 없다고 결정했나.

"그렇다. 돈은 물려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몇 억원이든 몇 십억원이든 서른살짜리 자식에게 내 돈을 줄 수 있을까. 30세에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은 이 아이가 부모의 재산을 지켜낼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흥청망청하는 인생으로 이로운 친구는 떠나고 해로운 사람만 주변에 남게 될 것이란 걱정을 지울 수 없다. '천천히 또박또박' 자수성가(自手成家)형 상장사 CEO들은 대부분 자식에게 혹독하다. 기업과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돈 버는 방법과 간수하는 경험을 물려줄 뿐이다. 교과서적인 얘기를 직접 눈으로 봤다."

▶ 잉여라면서 돈을 계속 좇는 이유가 궁금하다.

"당연히 계속 벌어야 한다. 인간의 DNA는 죽지 않는다. 나는 내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아 후세에게 전달하는 하나의 매개체에 불과하다. 다시 나의 DNA를 가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것, 바로 경험이다. 치열하게 배우고 깨달은 인생 경험을 물려주고 싶다. 자본시장에서 일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돈을 벌고 쓰고, 중국에 가보니 더 큰 세상과 배움이 있다는 걸 경험해서 알려주고 싶다. 뉴욕에서 상하이에서 자식을 가르“?경험하게 해 주려면 돈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경험해보지 않은 세상은 절대 알 수 없어서다. 언론과 서적을 통해 보는 것은 실제 나의 경험이 아니다. 지식과 상상의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생각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결단력과 자신감은 책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이 생겨서 열정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자식이 없을 때도 치열하게 살았다. 이렇게 사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 반대의 경우엔 뒤늦게 다시 공부해야 한다.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20대와 30대는 내 인생에서 단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40대에 30대의 삶을 후회하고 싶지 않다. 열정적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

▶ 당신에게 돈은 '목적' 인가 '수단' 인가

"돈은 꼭 인생에서 목적이 아닌 수단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주변에 인생의 목표가 '10억원이다, 30억원이다, 100억원이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몇 십억원만 있어도 다니던 회사를 당장 그만둔다고 다짐한다. 돈이 목적인 셈이다. 그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여유 없이 사는 것도 맞다. 하지만 돈에 대한 욕심은 또 다른 욕심을 불러오고 급기야 주변을 혼란스럽게 한다. 난 경험주의자다.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목적이 아닌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 돈을 좇아서 무엇을 배울 수 있었나.

"10여년 동안 수많은 상장기업 CEO와 펀드매니저, 인수·합병(M&A) 투자자, 돈 많은 개인투자자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을 가장 가까이서 봤다. 아울러 부자들이 빚쟁이로 주저앉거나 신용불량자로 무너지는 모습 역시 어렵지 않게 목격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돈은 버는 게 아니라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대부분이 빨리 많이 벌고 싶어한다. 이들은 불의와 타협하기도 한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돈 욕심'은 그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는 것도 알았다."

▶ 돈을 대하는 자세가 각자 다를 것 같다.

"확실히 다르다. 먼저 CEO들 사이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 봉급쟁이로 살다가 십 수년간 고생해 기술력으로 성공한 CEO,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은 CEO, M&A로 CEO 자리에 오른 유형들이다. 일반적으로 월셋방에서 살아본 자수성가 CEO는 돈 쓰는데 아주 인색하다. 천천히 또박또박 벌었기 때문에 천천히 신중하게 쓴다. 자식에 대한 교육도 엄격하다. 쉽게 재력과 지위를 차지한 CEO는 상대적으로 '물 쓰듯' 돈을 쓴다. 이들은 술 마시러 가도 와인, 위스키 마신다. 절대로 소주 안 마신다. M&A CEO의 경우 '양년반 후라이드반'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선 명쾌하게 결론내렸다."

▶ 자수성가 CEO의 '돈 철학'을 엿볼 수 있을까.

"이상하다. 이제와서 얘기하지만 애널리스트로서 회사를 방문해도 '소주 사 주는' CEO를 자주 만나러 가게 된다. 이들 CEO는 상장기업인데도 주가에 관심이 별로 없다. 주가가 많이 올라서 보유 중인 지분평가이익이 천정부지로 뛰어도 소주 마신다. '천천히 또박또박' 벌어오고 사업을 일으켜온 사람들이撰?확실히 돈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긴다. 멀리보고 사람도 사귀는 것 같다. 그래서 애널리스트와 CEO의 관계였지만 그들을 '천천히 또박또박' 찾아다녔다."

▶ 돈으로 돈을 번 이들은 무엇이 장점일까.

"주식시장 등에서 투자해 돈 번 사람들은 사고(思考)가 정말 유연하다. 경직되어 있지 않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관이 뚜렷해져 고집이 생긴다고 배웠다. 열린 사고라는 건 인간이 정말 갖기 힘든 무기인 것 같다. 투자성적이 뛰어난 펀드매니저를 보면 더 유연하다. 유연한 사고는 바로 '돈의 통로'다. 경험이 많은 매너저가 사고까지 유연하다면 그야말로 매니저로서 장수의 비결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항상 이 시대의 주인공을 찾아다닌다.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 돈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해달라.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같은 돈'이다. 나의 것이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의도와 다르게 긍정도 부정도 된다. 돈이 반드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해선 확고하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맛있는 요리를 해 주려면 칼이 필요하다. 돈은 칼과 같아서 잘못 쓰면 안 된다. 소중한 사람들이 아니라 칼날을 다른 이들에게 잘못 겨누면 안 된다. '불행의 무기'로 돌변해서다. 그래서 칼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돈에 베이지 않으려면 냉철함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돈에 대해 냉정해야만 '잘못 겨눈 칼날'을 지적해 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모인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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