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끝내 수용 거부
정부, 11일 향후계획 발표
[ 백승현 기자 ]
끝내 노동계의 양보는 없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른 통상임금 확대와 국회가 통과시킨 60세 정년연장, 노·사·정이 합의한 근로시간 단축 등 ‘선물 3종세트’를 챙긴 노동계는 노동개혁의 핵심인 취업규칙 변경과 일반해고 요건 완화 등 고용 유연성의 법제화를 거부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는 정부가 제시한 협상 시한인 10일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열어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 12시간 동안 두 가지 핵심 쟁점에 대해 절충을 벌였으나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측은 기존 입장을 고수해 최종 합의에는 실패했다. 노사정위는 12일 오후 5시 회의를 속개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11일 오전 기획재정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향후 노동개혁 추진 방향에 대한 합동브리핑을 갖고 노·사·정 합의를 다시 한 번 촉구할 계획이다.
노·사·정 논의의 핵심 쟁점은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 요건과 저(低)성과자 문제 해결을 위한 球奮莫?기준 및 절차 마련 등 두 가지다. 일반해고는 저성과자와 근무불량자를 해고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는 급여체계를 바꾸는 등 근로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때는 반드시 근로자 절반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한 법규를 완화하는 것이다.
'"생색은 정부가 다 내고 기업 부담 비용만 늘려"
약 4개월간의 정지 작업을 거쳐 지난해 12월 시작한 노동개혁 협상의 목표는 노동시장에 유연성과 안정성을 높여 저성장 시대에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갖게 하자는 취지였다.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면서 설정한 의제는 모두 65개였다. 이 가운데 일반해고와 취업규칙에 관한 의제를 제외한 나머지 63개 의제는 현재 일하고 있는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관련돼 있다. 기업 경영의 숨통을 터줄 수 있는 파견업종 확대나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의 문제는 노동계의 반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애초부터 얻을 게 없는 협상이었던 셈이다.
정부는 근로자 정년이 연장된 만큼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해고 요건을 명확히 해 기업이 고용을 늘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당장 내년부터 정년이 연장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입법 대신 가이드라인으로 노사관계의 혼란을 줄이자고 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정부가 근로자를 쉽게 해고하려고 한다”는 이른바 ‘쉬운 해고’ 프레임을 내세워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는 뒤늦게 ‘노동개혁은 곧 청년 일자리’라는 여론전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정부가 ‘프레임 싸움’에서 진 것도 문제지만 협상전략 부재는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만 늘렸다. 지난 4월 한국노총이 노사정위를 탈퇴한 뒤 8월 복귀하기까지 정부는 노동계를 달래기 위해 협상 중간중간 ‘히든카드’를 꺼냈다. 산업재해 인정범위 확대, 안전 관련 분야 비정규직 사용 제한 등 노동계가 반길 정책이 정부 곳곳에서 시도때도 없이 발표됐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실업급여 확대가 대표적이다. 협상 막바지에 써야 할 협상카드를 미리 써서 되레 협상을 망쳤다.
실업급여와 산재 인정 범위가 늘어나면 퇴직·산재 근로자들의 생활이 안정되는 만큼 기업의 보험료 부담은 늘어난다. 사측 관계자는 “협상이라는 것이 당사자끼리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하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얻은 게 하나도 없다”며 “생색은 정부가 내고 비용은 기업들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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