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토크빌 통해 본 민주주의…다수의 횡포 "조심하세요"

입력 2015-09-11 19:40  

Cover Story - 미국 민주주의는 안녕한가…'이상한' 대선



미국이 1776년 영국에서 독립한 지 55년이 지난 1831년, 프랑스 청년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1805~1859)은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을 찾았다. 당시 25세였던 그의 방문 목적은 미국 교도소 제도를 연구하는 데 있었다. 뉴욕에 도착한 그는 호기심 많은 청년답게 아홉 달 동안 미국 구석구석을 보고 기록했다. 프랑스 정부가 지시한 교도소 제도 연구뿐 아니라 미국의 정치, 경제 현장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1832년 귀국한 그는 3년간의 글쓰기 작업 끝에 책을 내놨다. 바로 그 유명한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 1권이다. 5년 뒤 2권이 나왔다.

민주주의의 위험과 위협

그는 이 책에서 왜 공화제 대의민주주의가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미국에서 성공했는가를 분석했다. 청년은 정치권력과 관련한 모든 문제가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에서 해결되는 과정을 보고 감탄했다. 프랑스에서 정착되지 못한 주권재민(주권은 국민에게 있다)이 미국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은 이유를 그는 책으로 남겼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한없이 부러워하면서도 민주주의에 가해질 수 있는 위협과 민주주의 자체에 내재된 위험을 함께 지적했다. 다수를 위해 운영되는 민주주의 다수결 투표제도에서 역으로 다수의 만능, 다수의 횡포, 이에 따른 입법·행정의 불안정, 여론 정치, 정부의 타락, 정치인의 포퓰리즘화라는 문제점을 보았다. 우리나라나 현재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토크빌은 간파한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 다수결 제도의 이런 문제를 들어 미국이 노예제도 폐지를 놓고 갈라질지도 모른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다수결 투표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정당 후보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속성이 있다는 점이다. 양당 정치에서 일반적으로 각 정당 후보들은 중도성향(혹은 부동표)의 표를 끌어모으는 데 집중한다. 정치 성향이 양 극단인 유권자 중 자기 당에 공감하는 한쪽 극단의 유권자들은 자연히 자기 당을 지지할 것이기 때문에 중도 성향 표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이른바 ‘중위 투표자 정리’(하단 기사 참조)다. 각 정당 후보들은 이 과정에서 선거가 치열해 질수록 인기영합적인 공약을 내세우게 되는데 이는 다수에서 제외된 소수의 권익을 침해하는 횡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다수의 의견이라는 이유로 소수의 재산을 강탈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문제는 어느 나라 선거에서나 똑같다.

히틀러를 키운 다수

다수를 차지하기 위해 공약이 남발되는 것은 민주주의의 약점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버니 샌더스는 공짜, 무상공약을 약속한다. 세제 개편을 통한 소득재분배, 부자증세, 국영건강보?도입, 대형 금융회사 해체, 공립대 무상교육, 근로자 연 2주 휴가의무화 등이다. 이 같은 공약은 학비 부담을 느끼는 젊은 대학생을 파고들고 있다. 트럼프도 백인 위주의 반이민정책, 관세장벽 강화, IS유전 미국화 등을 내세운다.

토크빌은 1권 제15장에서 “다수에게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다수를 향한 폭주를 우려했다.

다수 의견이 민주주의의 기반이 될 수 있지만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여론은 시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즘은 다수와 여론을 업었다. 1차 세계대전 패배로 세워진 황제가 물러나고 들어선 바이마르공화국은 민주주의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 민주주의가 나치즘의 토양이 됐다. 황폐해진 독일은 1차 대전 패배로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어야 했고, 불안을 느낀 실업자와 중산층은 민주주의라는 방식으로 히틀러를 지도자로 선택했다. 1933년 다수를 확보한 히틀러는 총통 자리에 올랐고 독일을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토크빌이 경고한 그대로였다.

여론과 다수는 늘 옳은가

민주주의는 주권재민의 사상을 실현하지만, 대중이 만드는 여론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토크빌은 본다. 나랏일에는 고도의 지적 수준을 요구하는 문제가 많고 여론도 변화할 수 있다. 외교 경제 사회 문화 정책은 일반 대중이 판단하기 어렵다. 오늘 사형제에 찬성하는 여론이 내일 억울한 사형수 이야기가 나오면 사형제 반대 여론으로 바뀔 수 있다. 히틀러를 만들어낸 것도 여론과 다수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토크빌은 언론과 종교, 지식인의 역할, 정보의 교류?강조했다. 미국 마을마다 열리는 정치토론장을 본 그는 국민이 정치에 적극적인 관심이 가져야 하는 이유를 발견했다. 언론과 결사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도 그는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했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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