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나는 여러 기현상은 미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 준다.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2016년 11월8일까지 1년 이상 남았지만 일찌감치 달아오른 대선은 어느 후진국의 양상을 방불케 한다. 미국이 대의제 민주주의로 세워진 나라라는 측면에서 정치인들은 이번 미국 선거를 주목하고 있다.
우선 공화당 민주당 후보들의 ‘괴상한’ 선거 공약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공화당 경선 후보자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는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해선 안될 말까지 마구 쏟아낸다. 옛날 같으면 여론의 질타로 도중하차해야 할 발언 수위가 아이로니컬하게 지지율 상승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미인대회 주최자인 그는 멕시코 이민자들을 마약사범·강간범으로 지칭하고, 여성 방송 앵커를 비하했다. 그래도 인기다. 트럼프의 공화당 내 지지율은 30%로 당내 최고다.
민주당에서도 자칭 사회주의자라고 밝힌 버니 샌더스가 파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사회주의자는 무신론자보다 지지를 얻기 힘들다는 곳이 미국이다. 하지만 그는 민주당의 노선과는 거리가 먼 파격적인 인기 영합적인 공약으로 45%의 痴嗤?얻어 유력한 후보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40%)을 앞서고 있다.
‘이상한 대선’을 우려하는 시각은 가문(家門) 정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민주당 후보로 나선 힐러리와 공화당의 잽 부시는 ‘부부 대통령’과 ‘3대 대통령’을 꿈꾼다. 힐러리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아내다. 잽 부시는 아버지 부시, 형 부시의 뒤를 이으려 한다. 전례 없는 ‘가문 대통령’ 경쟁 구도다. 주권재민을 선언한 민주주의 체제에서 피선거권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하지만 정치 가문의 ‘후광 효과(halo effect)’가 과도하면 새 인물의 등장을 막을 수 있다. 가문 정치는 정치 발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외신들은 지적한다.
미국의 이런 정치 현상에 대해 조지 워싱턴 등 건국의 아버지들은 어떻게 볼까. 미국 정치도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 것일까. 프랑스의 젊은이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를 극찬했다. 프랑스에선 뿌리내리지 못했던 주권재민 사상이 50년 넘게 잘 실현되는 데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권력 향방을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다수결이 많은 문제를 낳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저질화되고 있는 미국 대선이 그런 징후일까. 4, 5면에서 살펴보자.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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