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지원 등 경영판단 무시…손해 위험만으로도 처벌 판결
효성·웅진·태광 전현직 총수, 법원서 배임죄 무죄 다퉈
기업경영자 10명 중 6명, 배임죄 무서워 투자 '주저'
[ 서욱진 / 정소람 / 임도원 기자 ] 기업인들은 국세청이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배임죄라고 말한다. 언제 어떤 식으로 걸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배임죄에 대한 법원 판결도 오락가락 이다. 여론 향방에 따라 유·무죄가 결정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경영 판단에 대한 모든 책임을 경영자 개인이 져야 한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이렇다 보니 최고경영자(CEO)들이 배임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공포 이상’이다.
○계열사 살려내도 배임
현행 형법은 배임을 ‘자신의 임무에 위반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기업인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한 고의적 경영 판단이 아니더라도 배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건이다. 김 회장은 2011년 부실 계열사인 한유통과 웰롭을 부당 지 幣求?등으로 회사에 수천억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기소돼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됐다. 지난달 광복절 사면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하지만 김 회장은 당시 조치를 통해 부실 계열사를 살려내고, 그룹 전체가 부실화되는 것을 막았다. 한유통의 정규직은 100명, 웰롭은 150명으로 일자리도 지켜냈다. 물론 김 회장의 어떤 개인적인 이득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다수의 기업인이 배임 혐의로 기소돼 법원 재판을 받고 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2011년 1400억원대의 횡령과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작년 8월 1심에서 배임 혐의가 인정됐던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2심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유·무죄를 다투고 있다.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대한체육회 명예회장)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1심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정기화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법원은 ‘법인격 독립의 원칙’을 들어 계열사 지원을 유죄로 판단했지만 그룹 회장은 계열사 전체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해발생 안 해도 배임
형법은 배임죄 및 업무상 배임죄에 대해 ‘손해를 가한 때’ 성립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손해발생의 위험을 가져온 경우에도 배임죄가 적용되고 있다. 신규 사업 진출이나 인수합병(M&A) 등 일상적인 경영 활동도 배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자동차와 계열사들은 1997년 외환위기 때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해외펀드를 통해 현대강관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주당 4700원이던 주식 3648만주를 주당 5000원에 매입했다. 당시 법원은 실제 손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출자금 회수 가능성이 확실하지 않은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 자체가 손해가 날 가능성이 있다며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손해가 나더라도 정상적인 경영 판단이었다면 죄를 묻지 않는 게 세계적인 추세인데 한국은 손해 위험만 있어도 처벌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기업가 정신을 꺾는 배임
기업가 정신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연간 1000여명의 기업인이 형법상 배임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코노믹스 리뷰의 법률 전문가 설문에서 배임죄 처벌 강화로 인해 나타나는 가장 큰 부작용으로 69.2%가 ‘기업가 정신의 위축’을 꼽았다.
배임죄 때문에 관가가 아닌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재계에서도 복지부동이 나타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기업 경영자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60%가 ‘배임죄로 인해 경영판단에 애로를 느낀 경우가 있다’고 답했다.
■ 경영판단의 원칙
경영자가 기업 이익을 위해 신중하게 판단했다면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한다 해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 대법원은 2002년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기 위해 배임죄 판단에서 경영판단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서욱진/정소람/임도원 기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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