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론으로 본 대우그룹 해체
부실규모 숨기느라 급급한 대우
정부가 준 구조조정 기회 내쳐
김 전 회장의 '기획해체설'은 억지
[ 정종태 기자 ] 조원동 전 경제수석은 책에서 1990년대 말 대우그룹 해체 과정에서 김우중 전 회장과 정부 간에 벌어진 갈등을 게임이론으로 풀이했다. 그는 대우 구조조정이 본격화한 김대중 정부 초기 청와대 경제수석실 선임행정관으로 실무를 맡고 있었다. 김 전 회장이 회고록 ‘김우중과의 대화’에서 대우가 부실기업으로 몰린 계기가 됐다고 주장한 ‘김우중 회장 접견 자료’를 작성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당사자다. 당시 경제수석이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금감위원장이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었다.
▷대우 해체에 대해 김 전 회장은 최근 회고록에서 ‘경제관료에 의한 기획해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책을 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김 전 회장이 ‘기획해체설’이라며 억울해한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당시 대우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끝까지 매달렸다는 것인데, 이걸 두 사람 사이의 포커게임으로 설명해 봅시다. 두 선수는 모두 상대방의 패를 모르는 비대칭 정보 상황입니다. 만약 자신의 패가 어중간하다면 어떻게 행동할까요. 상대방에게 약하게 보이면 상대방의 강수를 유발하기 때문에 일단 강하게 베팅합니다. 혹시라도 상대방이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나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있기 때문이죠. 이름하여 ‘허세부리기 전략’입니다. 당시 대우그룹의 경영 상황은 김 전 회장만이 정확하게 알고 있는 비대칭 정보였고, 만약 경영 상황을 솔직히 밝힐 경우 경영권을 전부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선택은 자명합니다. 끝까지 버티며 강수를 두는 것이죠.”
▷김 전 회장의 ‘허세부리기 전략’이 대우를 해체로 몰아갔다는 뜻입니까.
“당시 대우 워크아웃 결정 후 실사 과정에서 드러난 부실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지만 정확한 정보는 김 전 회장만이 알고 있었다고 봅니다. 김 전 회장은 이런 비대칭 정보 상황을 이용해 끝까지 버티는 쪽으로 갔죠. 그렇다면 이 상태에서 시장이 대우그룹의 진면목을 판단할 수 있게끔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스스로 구조조정의 길을 밟도록 기회를 준 뒤 김 전 회장이 어떻게 움직이느냐를 보고 시장이 최종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었습니다. 김 전 회장은 예상대로 구조조정을 계속 늦추는 길을 택했고, 시장 신뢰는 급속히 무너져 해체 과정을 걷게 된 것이죠. 당시 대우를 제외한 4대 그룹은 정부가 제시한 길을 따라 성공했습니다. 이걸 기획했다고 하면 기회를 준 정부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을까요.”
■ ‘경제는 게임이다’는…
기업 구조조정 등 ‘게임이론’으로 설명
경제관료들이 쓴 책은 대부분 회고록이다. 하지만 조원동 전 경제수석이 펴낸 ‘경제는 게임이다’는 다르다. 회고록이라기보다는 경제 이론서에 가깝다. 1990년대 말 각종 경제개혁 조치들을 게임이론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조망한 만큼 책 곳곳에 이론적 설명과 도표, 그래프 등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딱딱하지만은 않다. 저자 스스로 ‘에세이’라고 표현했듯, 당시 정책 입안자로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한 현장 얘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책에는 자본시장 개방, 법정관리와 워크아웃, 대우그룹 구조조정, 기업 간 빅딜, 공적 자금 투입 등 10가지 테마가 등장한다. 각각의 조치를 둘러싸고 정부와 기업 등 이해 당사자 간에 벌어진 충돌을 ‘주인-대리인 이론’, ‘죄수의 딜레마’ 등 다양한 게임이론을 동원해 풀이했다. 때로는 경제 주체 간 다툼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중고차 시장 거래, 포커게임 등 실생활의 각종 비유도 동원했다. 권오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풍부한 정책 수립 경험과 고도의 학문적 배경을 갖춘 조 전 수석이 아니라면 분석해낼 수 없는 가치 있는 자료”라며 일독을 권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게임이론이라는 현미경으로 보여주는 상황은 정밀하고, 분석은 예리하다”고 평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경제 각 부문에 걸쳐 개혁이 절실한 시점에 나온 이 책은 지난 사례를 다루고 있지만 현재의 개혁 과제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단초를 제시하고 獵?rdquo;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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