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적 고용지표와 물가수준 미흡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16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열린다. 최대 관심사는 과연 정책금리를 올릴 것인지 여부다. 금리를 올린다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 이후 7년 이상 지속된 ‘제로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 미국 중앙은행(Fed) 통화정책의 대전환이다.
2012년 12월부터 Fed는 전통적인 중앙은행 목표인 물가안정에 고용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해 통화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금리인상과 같은 중요한 현안은 물가와 고용지표를 중시하는 경제지표 의존방식으로 결정한다. Fed가 추정하는 자연실업률은 5.0~5.2%, 인플레이션 목표치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로 2%다.
지난 8월 실업률은 5.1%로 완전고용 수준에 도달했다. 대표적인 양적 고용지표인 실업률만 놓고 본다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옐런의 게시판(Yellen’s dashboards)’이라 불리는 노동시장 참가율, 신규 취업자, 임금상승률, 정규직 고용비율 등과 같은 고용의 질적 지표는 여전히 미흡하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질적 고용지표가 더 중요하다.
질적 지표 개선은 수반되지 않고 실업률이 떨어지는 것은 실업률 산출방식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구직자 100명 가운데 10명이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면 실업률은 10%다. 이때 실업자는 10명으로 같아도 구직자가 110명으로 늘어나면 실업률은 9%로 떨어진다. 신규 취업자가 늘어나지 않고 실업률만 떨어지는 셈이다.
금융위기 이후 흐트러진 고용과 물가 간 관계도 복원되지 않고 있다. 실업률과 임금상승률이 부(負)의 관계에 있다는 ‘필립스 곡선’이 잘 알려져 있다. 실업률이 완전고용수준이라면 임금상승률은 올라가야 한다. 8월 임금상승률은 2.2%로 7월과 같았다. 필립스 곡선에서 임금상승률의 대용변수인 소비자물가상승률도 오르지 않았다.
실업률은 떨어지는데 왜 물가는 오르지 않느냐 하는 점이 Fed의 고민이다. 대부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잡는 이론적 근거인 어빙 피셔의 화폐수량설(MV=PQ)에 따르면 통화량이 증가하면 물가는 올라가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Fed는 세 차례에 걸친 양적 완화 정책을 통해 1913년 설립 이후 최대 규모로 통화를 공급해 왔다.
8월에 열린 잭슨홀 미팅에서 기타 고피너스 하버드대 교수는 화폐수량설을 전면으로 부인했다. 통화와 물가 간 전통적인 상관관계가 붕괴된 만큼 물가를 감안하지 않고 금리인상과 같은 통화정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식적으로 표명하지 않았지만 스탠리 피셔 Fed 부의장도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다.
충분한 근거는 있다. 물가상승이 수반되지 않는 성장과 고용인 ‘디스인플레이션 현상’은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면서 공급과잉 시대에 접어든 데 따른 것이다. 시장여건이 초과공급일 때 상품 공급자인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종 상품의 가격파괴 혹은 인하 경쟁이 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월마트 효과’다.
주력산업도 바뀌었다. ‘자원의 희소성 법칙’과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제조업이 주력산업일 때는 생산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고용을 늘려야 생산을 늘릴 수 있다. 이때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로 구직자와 신규 취업자가 늘어난다. 이 중 신규 취업자가 더 늘면서 실업률은 떨어지고 임금상승률은 높아져 필립스 관계가 잘 들어맞는다.
최근에는 인터넷, 모바일 등과 같은 정보기술(IT) 업종이 주력산업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제조업과 달리 IT산업은 네트워크만 깔면 깔수록 생산성이 늘어나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생산하면 구직자와 신규 취업자가 늘어나지만 이번에는 전자가 더 늘어나 실업률은 떨어진다. 하지만 임금은 오르지 않아 필립스 관계가 흐트러진다.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두고 논쟁이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화폐수량설을 부인하는 학자는 이 이론에 근거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포기하거나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Fed는 현재 인플레이션 타깃 선 2%를 고수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2.5~3.5%로 설정한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하향 조정하는 방안(밴드폭도 폐지)을 검토하고 있다.
제로금리는 비정상적인 통화정책이다. 오래 끌면 끌수록 금리인상 실기(失機)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는 만 ?가능한 한 빨리 정상화하려는 것이 Fed의 입장이다. 그러나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 성급한 금리인상으로 어렵게 살아난 경기가 침체한다면 Fed 역사상 최대 치욕인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를 다시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옐런의 딜레마’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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