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이 기자 ] 한국 사회에 추첨제가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도 늘고 있다.
서울의 한 국제중학교는 추첨으로 신입생을 뽑으면서 생겨난 학생들의 실력 격차 때문에 고민이 많다. 몇 년 전엔 탁구공 추첨으로 입학 당락을 결정한 지 한 달도 안 돼 7명의 전학자가 나오기도 했다. 실력이나 잠재력을 보지 않고 ‘탁구공 색깔’로 당락을 결정한 탓에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힘들어 했다. 입학 전 특별수업까지 했지만 학생들의 실력 격차를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국공립 유치원 모집 방식이 선착순에서 추첨제로 전환된 뒤 학부모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한 학부모는 “불안한 마음에 집에서 거리가 먼 유치원까지 지원했다가 아이만 고생시키고 있다”며 “차라리 다른 기준이 있으면 납득할 텐데 운에 따라 결정되니 붙어놓고도 억울한 마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추첨제의 확산이 사회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하루아침에 추첨제로 바뀜에 따라 그동안 묵묵히 노력해온 사람들의 박탈감이 커진 것도 문제다. 추첨제로 바뀌는 의무경찰 선발 시험을 준비하는 김윤 ?씨(22)는 “몇 년간 의경 시험을 준비했는데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과 똑같이 운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하니 허무하다”고 말했다.
추첨제도가 불필요한 수요를 유발해 사회적인 비용 낭비로 이어지거나 비리나 편법을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방자치단체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이 공급하는 공공택지 추첨엔 사업 능력이 없는 투기 세력이 참여하는 일이 공공연히 일어난다. 일단 추첨에 참여하고 당첨되면 곧바로 전매해 이득을 얻는 것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협력사 등 수십 곳을 동원해 추첨에 참여하게 해 당첨 확률을 높이는 편법도 횡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세일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얼핏 보기엔 추첨이 공정해 보일 수 있지만 일부 특권층의 물밑거래가 존재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만 추첨이 적용될 수 있다는 불신이 팽배한 우리 사회 풍토에서 적절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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