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국보다 무서운 한국 정치권

입력 2015-09-16 18:17   수정 2015-09-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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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선 산업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


최근 한 대기업의 고위 임원과 자리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경력 30년 이상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경영인이었다. 그에게 “전자 철강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사업 분야에서 중국이 맹렬히 추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산업계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산업이라는 생태계는 항상 변화하고 어느 때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각 기업이 하기 나름이라는 얘기다. 그는 이어 이런 말을 덧붙였다. “진짜 무서운 건 중국이 아닙니다. 한국의 시스템이지….” 정부나 정치권이 우리 사회를 혁신이 나올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인수합병(M&A)을 들었다. 30년 넘게 사업을 하면서 국내에서 제대로 된 M&A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사더라도 외국 기업만 샀다는 것이다. 어느 기업에 관심만 가져도 정치권에서 바로 “문어발식 확장이다” “중소기업이 일궈 놓은 걸 삼키려 하냐”고 맹공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식의 ‘창업→M&A→사업확대→재투자’의 모델이 나올 수 없다는 얘기였다.

위그선(물 위를 일정 높이로 떠서 움직이는 일종의 선박) 얘기도 했다. 10여년 전 융합이라는 개념이 유행하면서 국내에서도 배와 비행기를 합친 위그선을 독자 기술로 개발했다. 하지만 여태껏 국내에선 위그선이 다닐 수 없다. 관련 규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허가해줬다가 연말에 감사원이 ‘뇌물 먹었냐’는 식으로 닦달할 게 뻔한데 왜 허가를 하겠느냐”며 혀를 찼다.

무인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실리콘밸리에선 이미 구글의 무인차가 돌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트랙 안만 돌아다닐 뿐이다. 무인자동차가 미래 먹거리인 것은 누구나 알지만, 우리가 결코 미국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한탄이 이어졌다. 몇 번 목소리를 내려고도 해 봤지만 국회에 불려가 혼이 나는 주변 경영인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고도 했다.

그는 “정말로 일을 못하게 한다”며 “진짜 문제는 개선이 아닌 개악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윤선 산업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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