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노리는 도구 아니라 존엄성 보호 본질 살려야
여상훈 < 서울가정법원장 shyeo@scourt.go.kr >
평소 건강에 자신있어하던 80대 중반의 국내 중견기업 대표 A씨. 언제부턴가 기억력이 조금씩 흐려지더니 간단한 숫자 계산이 안 되기도 했다.
A씨의 아들은 몇 년 전부터 부친의 회사 운영을 맡아오다 과거 A씨와 함께 회사를 일궜던 이른바 ‘가신(家臣) 그룹’과 심한 갈등을 빚었다. 아들을 비롯한 A씨의 자녀들은 “A씨가 치매에 걸려 회사 경영은 물론 일상생활도 독립적으로 할 수 없으니 아들이 성년후견인이 돼야 한다”며 성년후견개시심판을 청구했다. A씨는 “난 정신이 멀쩡한데, 아들 쪽에서 내 재산과 회사를 노려 치매노인으로 몰고 있다”며 맞섰다.
이 재판은 A씨에게 후견인을 둘 필요가 있는지를 결정하고, 만일 후견인이 필요하다면 누가 그 역할을 가장 잘할 것인지를 정하는 재판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의 관심은 회사의 경영권과 A씨의 주식 등 재산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 ‘성년후견제도’의 본질을 나타내는 건 아니다. 2013년 7월부터 시행된 성년후견제도는 이처럼 질병이나 장애, 고령 등으로 인한 정신적 장애 때문에 혼자서는 뭔가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후견인의 도움으로 재산관리나 신상보호를 받게 하는 제도다. 금치산제도나 한정치산제도와 비교했을 때,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의 의사를 더욱 존중하고, 그들에게 남아 있는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특징이다.
대부분의 성년후견재판에선 가족들이 한마음으로 염려하고 응원하는 가운데, 친족 중 피후견인을 돌보는 데 가장 적절한 사람이 후견인으로 선임되고 있다. 그런데 부모를 돌보는 건 뒷전인 채 재산에만 눈이 어두워 있는 자녀 또는 먼 친척들 간에 서로 후견인이 되겠다며 이전투구하는 볼썽사나운 경우도 꽤 있다.
또 재판 도중 부모의 재산은 이미 자식들이 모두 처분해버리고, 부모는 이름도 없는 보호소에서 힘든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일도 점점 늘고 있다.
자녀들은 부모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부모들은 무엇을 물려주는 게 진정 자녀들을 위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무엇이 건강한 부(富)와 성공의 대물림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여상훈 < 서울가정법원장 shyeo@scourt.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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