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 기관조수 입사…올 연말 정년
디젤부터 KTX까지 '철도 산증인'
"직업병으로 난청 앓지만 보람 커"
[ 이미아 기자 ] “나 한 사람 일하면 900명 넘는 사람이 고향에 편히 갈 수 있잖아요. 그걸로 된 거죠.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열심히 일하다 보니 벌써 정년퇴직할 때가 됐네요.”
코레일(한국철도공사)에서 인생의 6할을 철도 기관사로 산 박영옥 KTX 기장(58). 그는 올해 말 35년6개월 동안 일한 열차 조종석을 떠난다. 최근 서울역 인근의 한 식당에서 만난 박 기장은 “조종석에 에어컨도 없던 1980년대 디젤 화물차에서 시작해 KTX까지 다 몰아봤으니 후회는 없다”며 “내년부턴 다른 사람들처럼 명절을 보낼 수 있어서 기쁘기도 하고, 올해 추석이 마지막 명절 운행이란 생각에 기분이 묘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 기장이 처음부터 철도인을 꿈꾼 건 아니었다. 고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1978년 휴직계를 내고 군에 입대했다. 1980년 제대한 뒤 우연히 철도청 기관조수 공개채용 공고를 보고 응시했다.
“군대 갔을 때 2차 오일쇼크가 터져서 분위기가 뒤숭숭하던 때라 제대하면 다른 직장을 찾으려 했습니다. 지금은 철도 기관사가 되려는 사람이 많지만, 옛날에 기관사는 무시당하는 직업이었어요. 인력이 모자라니 기관조수를 채용해서 3년 동안 일하게 하고, 기관사시험 응시 자격을 줬죠.”
기관사 업무는 고달팠다. 늘 바뀌는 근무일정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고, 장거리 이동이 많아 밤을 새워야 할 때도 많았다. 설과 추석 같은 명절이나 공휴일 등 다른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는 날이 기관사에겐 가장 바쁜 날이었다. 철길 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소음성 난청도 앓게 됐다. 박 기장은 인터뷰 중간중간 “잘 안 들리니 다시 한번 말해 달라”고 했다.
“기관사들은 대부분 직업병으로 난청과 소화기 질환을 앓고 있어요. 졸음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고요. 너무 졸릴 땐 잠에서 깨려 운행 내내 서서 갈 때도 있었습니다. 명절에 가족을 제대로 못 챙기는 건 모든 기관사가 다 겪는 것이니 어쩔 수 없죠.”
철도 기관사로서의 사명감에 대해 묻자 그는 “나 같은 사람은 사명감을 논할 자격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사실 젊을 땐 명절이나 휴일에 열차 타는 승객을 보면 정말 부러웠어요. ‘나도 저렇게 승객으로 어딘가 놀러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자랑스러워졌어요. 기쁨을 주잖아요. 내가 운행하는 기차를 타고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가니까요.”
박 기장은 “처음엔 ‘몇 년만 일하고 그만둬야지’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평생 직업이 됐다”며 “철도인으로 열심히 살 수 있도록 도와준 아내와 딸, 아들에게 가장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끔 동네 사람들이 ‘너희 아버지는 대체 뭐 하시기에 한밤중에 들어오고 대낮에 나가시느냐’고 물었다는 얘길 들었을 때 가슴 한켠이 찡했다”며 “퇴직 후엔 가족과 건강하고 즐겁게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시간표’에 맞춰 살고 싶다”고 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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