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대규모 할인전
수출·투자 부진 만회
백화점·전통시장·쇼핑몰 등
온·오프 유통업체 대거 참여
관(官) 행사에 기업 동원 지적도
[ 김재후 기자 ] 정부가 대규모 할인행사를 잇달아 연다. 수출과 투자 부진을 소비로 만회하겠다는 전략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다음달 1일부터 14일까지 2주간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펼친다. 미국 유통업체들이 연말 재고 소진을 위해 벌이는 대규모 할인행사인 블랙프라이데이에서 착안했다.
이번 행사에는 신세계 롯데 등 백화점과 이마트 등 대형마트, CU GS25 등 편의점, 11번가 등 온라인쇼핑몰, 200여개 전국 전통시장을 비롯해 거의 대부분 유통업체가 참가한다. BBQ 빕스 등 프랜차이즈업체들도 행사에 동참한다. 전응길 산업부 유통물류과장은“최대 70%까지 할인하는 제품이 나올 수 있도록 유통업체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부터 할인행사를 집중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지난달 19일 중국 소비자를 겨냥한 ‘싱싱코리아’ 이벤트를 시작했고 이달 들어선 ‘한가위 스페셜위크’(9월14~25일) 행사를 진행 중이다.
"3% 성장, 소비없인 어렵다"…내수 살리기 총력전
지난달 시작한 ‘싱싱코리아’와 이달 들어 막을 올린 ‘한가위 스페셜위크(9월14~25일)’, ‘코리아 그랜드세일’에 이어 22일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계획까지 발표되면서 정부 주도의 대규모 할인행사가 올 하반기 내내 열리게 됐다.
‘대한민국은 세일 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할인행사가 집중되고 있는 건 그만큼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만한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매달 1일 발표하는 수출 동향(통관 기준)을 보면 올 들어 8월까지 수출은 매달 곤두박질하고 있다. 지난달엔 수출이 1년 전보다 14.7% 급감했다. 6년 만의 최대 감소폭이다. 하반기엔 수출 감소폭이 더 커져 올 한국 수출은 지난해보다 총 6.3%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LG경제연구원)도 나온다. 기업들도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중국의 경기 악화 등으로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정부가 제시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3.0%)를 달성하기는 어려워진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 2분기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2.2%에 그쳤다. 1분기(2.5%)보다 악화됐다. 블룸버그는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대 초반으로 떨어져 2009년(0.7%) 이래 6년 만에 가장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처럼 수출과 투자가 부진한 상황에서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소비 진작밖에 없다. 정부가 할인행사 시리즈를 내놓고 있는 이유다.
유관 부처들도 가세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할인행사를 할 땐 행사 직전 가격을 20일간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을 이번 행사엔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행사 기간 중 5만원 이상 물품을 신용카드로 구입한 고객이 5개월 무이자 할부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신용카드사들의 협조를 이끌어냈다. 산업부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 행사 기간과 겹치면 휴업일을 다른 날짜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협조 요청을 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온라인·오프라인 유통업체가 동시에 참여하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온라인쇼핑몰에서만 가능했던 ‘싱싱코리아’ 이벤트나 소형 가게를 이용하는 내국인이 주요 대상인 ‘한가위 스페셜위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엔 신세계 롯데 현대 갤러리아 AK 등 전국 75%의 백화점과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CU GS25 미니스톱 세븐일레븐 등 주요 편의점뿐만 아니라 11번가 G마켓 등 16개 온라인 쇼핑몰도 참여한다.
비판도 있다. ‘관(官)’ 주도의 할인 행사에 관련 기업들이 동원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는 연말 재고 소진을 위해 유통업체들이 자율적으로 기획한 행사다.
반면 한국은 미국과 유통구조가 달라 한꺼번에 대규모 할인행사에 나서기 쉽지 않은 구조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백화점은 20년째 10월에 정기세일을 해왔고, 전통시장은 과일 채소 등의 할인 개념이 없다”며 “대형마트는 이미 싸게 팔고 있어 추가 할인 품목이 마땅치 않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응길 산업부 유통물류과장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으로 발생한 내수 침체는 유통업계가 가장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소비자들이 혜택을 보고 업체들의 매출도 늘면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처럼 정례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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