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폭스바겐과 히틀러

입력 2015-09-23 18:03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어른 둘과 아이 셋이 탈 수 있고, 7L의 연료로 100㎞를 갈 수 있는 차를 만들어 주시오. 차값은 모터사이클과 비슷한 990마르크 이하여야 합니다.”

1934년 베를린 모터쇼 폐막 후 히틀러가 ‘자동차 박사’ 페르디난트 포르셰에게 주문한 내용이다. 히틀러는 이 프로젝트를 ‘카데프바겐(Kdf-Wagen)’이라고 불렀다. ‘즐거움을 통한 힘-자동차’란 뜻으로, 나치 선전구호를 녹여낸 것이었다. 이 말을 좋아하지 않았던 포르셰는 ‘국민차’라는 뜻을 가진 ‘폭스바겐(독일어 폴크스바겐·Volkswagen)’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1937년 독일 국민차 폭스바겐이 탄생했다.

첫 작품인 딱정벌레차 비틀은 1939년 베를린 모터쇼에 공개된 이후 공전의 히트를 거듭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국민차 구상은 그가 일으킨 2차 세계대전 때문에 무참히 일그러졌다. 폭스바겐은 전쟁 중 전투 장비를 주로 생산하다 급기야 폭파되고 말았다.

옛 서독 경제 재건사업으로 겨우 살아난 뒤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 이 회사는 체코와 스웨덴 기업까지 인수하며 12개 브랜드를 가진 거대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생산공장만 세계 60여곳에 있다. 올 상반기엔 약 504만대를 팔아 판매량 1위에 올랐다. 지구촌 자동차 10대 중 한 대가 폭스바겐그룹 브랜드다.

폭스바겐의 최대 강점은 ‘블루 모션’을 슬로건으로 한 친환경 기술이다. 그런 폭스바겐이 배기가스 사기극으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친환경’이라는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 꼼수 때문에 브랜드 전체가 휘청거릴 지경이다. 미국에서만 48만2000여대 리콜에 180억달러의 과징금을 물 전망이다. 유럽과 아시아 각국도 칼을 빼들었다. 세계적으로 1100만대 이상이 의혹 대상이다. 이번 사태로 주가가 올해 고점 대비 반토막이 됐고 시가총액 80조원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이 바람에 독일 경제도 타격을 받고 있다.

히틀러의 나치 제국처럼 세계를 제패하려는 자동차 왕국의 탐욕 때문일까. 누구보다 엄격한 품질관리와 신뢰를 강조해 온 회사였기에 소비자들의 분노는 더 크다. 게다가 단순한 제품 결함이 아니라 계획적인 속임수라니! 한때는 비틀 사진 아래 ‘앞좌석 사물함 문의 크롬 도금에 작은 흠집이 나 있어 교체해야 한다’는 자막을 넣은 ‘진실 광고’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회사가 아닌가.

그러니 국내 CF 속 문구 “당신만 몰랐다”를 패러디한 소비자들의 비아냥을 듣고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폭스바겐의 속임수를 우리만 몰랐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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