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거리 고치며 '문화'를 만든 서울사람들

입력 2015-10-05 11:55   수정 2015-10-06 00:00

<p>[나는서울시민이다=김영옥 마을기자] "이 동네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저 언덕 위 창신2동에 삽니다. 38년째 살고 있죠. 창신동은 서울 한양도성은 물론 흥인지문(동대문) 등 역사문화자원이 다수 존재하는 곳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직한 땀을 흘리며 살아가는 곳입니다. 오늘 다양한 창신동의 모습을 보게 되실 겁니다."</p>

<p>창신동 봉제마을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해설을 도맡아 해주는 손경주 이사(도시융합협동조합 어반하이브리드)는 진지하게 운을 뗐다.</p>

▲ 종로구 창신동 봉제마을로 마을여행을 떠나볼까~(사진=김영옥 마을기자)
<p>그냥 봤을 땐 허름한 동네이지만 마을 곳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좁고 가파른 비탈길을 걷는 경험은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공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무심코 지나쳤을 곳이 매력적인 여행지가 되기 충분하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p>

<p>♦ 야릇한 활기가 주는 긴장감, 여기 이런 곳이었어?</p>

<p>'드르륵, 드르륵, ......', '부르릉, 부르릉 과~앙, ......'</p>

<p>분명 일반적인 주택가 골목이었지만 창신동의 골목길은 달랐다. 골목 속으로 걸음을 옮길수록 미싱소리는 더욱 자주 들렸고, 짐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p>

<p>뒤에서, 앞에서 어느 샌가 나타난 오토바이들의 바쁜 질주, 창신동 봉제마을의 메인 스트리트 '창신길'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p>

▲ 창신동 봉제마을엔 원단과 원부자재, 완성품들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이 골목길을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사진=김영옥 마을기자)
▲ 봉제공장에서 옷을 만들고 있는 직원. 창신동 봉제마을에는 크고 작은 공장이 약 900여개가 밀집되어 있다.(사진=김영옥 마을기자)
▲ 창신동 봉제마을 골목골목의 크고 작은 공장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새벽까지 미싱소리가 끊이지 않는다.(사진=김영옥 마을기자)
▲ 봉제공장 안에 다양한 패턴이 걸려 있다.(사진=김영옥 마을기자)
<p>창신동 봉제마을은 동대문 시장의 주요 생산지이자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공장들(약 900여개)이 모여 있는 봉제 산업의 집적지이다.</p>

<p>이곳에선 좁은 골목길 사이로 원단과 원부자재, 완성품들을 바쁘게 옮기는 오토바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새로운 옷을 빠르?하루, 늦어도 사흘 이내에 만들어 내는 세계적으로 빠른 생산시스템을 갖춘 곳이다.</p>

<p>옷감이 들어 왔다가 옷이 되어 나가는 길, 원부자재와 완성품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컨베이어 벨트 같은 창신길엔 아래쪽엔 큰 공장들이,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작은 가내 하청 공장들이 주택마다 숨어 있었다.</p>

<p>창신길의 활기찬 긴장감을 느끼며 조금 더 올라가자 왼편 작은 골목길에 전태일 열사의 초상화가 큼직하게 내걸린 전태일 재단을 만날 수 있었다.</p>

▲ 창신길 초입에서 만난 전태일 재단 건물. 그의 숭고한 희생은 우리나라의 노동권이 60여년 이상 진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사진=김영옥 마을기자)
<p>1970년 청계천 동원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며 분신한 그의 숭고한 희생은 우리나라의 노동권이 60여년 이상 진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p>

<p>일주일에 100시간, 하루 12시간 이상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 평화시장 봉제 산업 노동자들의 처절한 외침은 이곳 창신동 봉제마을이 형성되는 데도 일조했다.</p>

<p>공장을 운영하던 업주들은 차츰 일감을 외부로 보내게 됐고, 봉제산업 종사자들은 40~50년 전부터 창신동에 하나둘씩 정착해, 크고 작은 공장들을 운영하게 됐다.</p>

<p>골목 자체가 봉제거리 박물관인 곳. 창신2동 647번지</p>

<p>창신동의 대표적인 봉제공장들이 몰려있는 창신2동 647번지 일대는 '살아있는 봉제거리 박물관'이라고 불린다.</p>

▲ 하청공장이 밀집해 있는 창신길 647번지는 살아있는 봉제거리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곳곳에 안내판을 설치해 이곳의 특징을 알리고 있다. (사진=김영옥 마을기자)
▲ 봉제거리 박물관에 대한 설명 (사진=김영옥 마을기자)
<p>이곳에서는 오토바이가 통행할 수 있는 골목길이면 어디에서나 봉제공장을 찾아볼 수 있으며 마을 골목길 곳곳에서 봉제 기계와 라디오 음악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p>

<p>봉제거리박물관 골목에는 창신동과 봉제산업의 역사, 창신동 봉제공장의 24시, 봉제용어 8가지, 의류생산 공정 4단계, 봉제인 기억의 벽 등 봉제 산업에 대한 개략적인 안내판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p>

▲ 봉제용어 8가지(사진=김영옥 마을기자)
▲ 창신동 봉제공장의 24시를 간략하게 설명해 놓았다(사진=김영옥 마을기자)
▲ 의류생산공정 4단계에 대해 설명해 놓은 안내판(사진=김영옥 마을기자)
<p>"봉제거리 박물관을 만들고 안내판들을 붙인 이유는 창신동 봉제마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자존감을 갖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30-40년씩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게 일해 완성된 숙련 기술자들은 존중 받아야 돼요. 또한 창신동을 그저 그런 곳으로 아는 외부 사람들에게 창신동 봉제마을을 제대로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p>

<p>손경주 이사가 말하는 조성 동기다.</p>

<p>창신동 봉제거리 박물관 조성은 일반인들에게는 창신동과 봉제산업에 대한 이해를, 주민들에게는 자존감을 살리는 계기가 됐다.</p>

<p>특히 안내판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봉제인 기억의 벽'. 이 안내판에는 화려한 패션을 이끄는 동대문 시장 뒤에서 'Made in 창신동'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곳 봉제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문구와 함께 창신동에서 땀 흘리고 있는 봉제인들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p>

<p>직공으로 시작해 20-30년씩 일하다 공장을 차린 그들의 우직함이 가치와 힘을 발휘해, 지금의 창신동을 있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p>

▲ 봉제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문구와 함께 봉제인들의 이름을 적어 놓은 '봉제인 기억의 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손경주 도시융합협동조합 이사.(사진=김영옥 마을기자)
▲ 봉제거리 박물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마을여행 참가자들 (사진=김영옥 마을기자)
▲ 마을여행 참가자들이 봉제공장 안에서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듣고 있다. (사진=김영옥 마을기자)
<p>창신동은 동대문 시장과도 가까워 창신동에서 만든 물건湧?동대문 시장(도매시장과 소매시장) 수요와 공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왔다.</p>

<p>동대문시장 도매시장에서 일감을 발주 받아 동대문 종합시장에서 원부자재들을 실은 오토바이가 창신동으로 들어오면, 창신동 안에 있는 큰 원천공장에서 옷을 재단해서 작은 가내 하청공장에 일감을 나눠 주고, 옷이 완성되면 마무리 작업(시야게 과정)을 거쳐 도매시장에 납품되는 거대한 삼각형 구조를 가능케 했다.</p>

<p>이렇게 창신동 봉제마을에서 만들어 납품한 도매시장의 옷들은 두타나 밀레오레 혹은 홍대 로드샵,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p>

<p>마을의 이색적인 명소들인 채석장 절개지, 회오리 길과 영화 드라마 촬영지들…</p>

<p>창신동에는 마을 중간지점에 깎아지는 듯 한 수직의 채석장 절개지가 있다. 절개지 위로 집들이 위태로이 앉아 있기도 하고 절개지 밑으로 주택들이 옹기종기 조성돼 있기도 하다.</p>

▲ 채석장 절개지 위로 집들이 위태로이 앉아 있기도 하고 절개지 밑으로 주택들이 옹기종기 조성돼 있기도 하다.(사진=김영옥 마을기자)
<p>절개지는 일제 강점기 경성부 직영 채석장 때문에 만들어진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p>

<p>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총독부, 서울시청, 한국은행 등을 짓기 위한 석재가 필요했는데, 돌의 질이 좋고 도심과 가깝다는 이유로 이곳의 화강암을 채취하기 시작해 지금의 절개지가 형성됐다고 한다.</p>

<p>절개지 아래에 생겨난 돌산 밑 마을은 좁은 골목길과 다양한 주택구조로 독특한 경관을 자아내고 있었다.</p>

▲ 낙산언덕에서 바라 본 마을과 도심. 해가 지고 있다. 조금 있으면 미생의 장그래가 큰 가방을 메고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이 언덕집으로 걸어올 것만 같다. (사진=김영옥 마을기자)
▲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주인공 길라임이 살던 집이다(사진=김영옥 마을기자)
<p>창신동에는 영화 '건축학개론' 촬영지는 물론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길라임이 살던 이층집도 있고, 드라마 '미생' 촬영지도 있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가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골목길을 걸어 퇴근하던 장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낙산언덕 위에서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 등이 현장에 서자 드라마 속 장면들처럼 스쳐지나갔다.</p>

<p>창신동에는 급경사 커브길로 유명한 일명 '회오리길'이 있는데 한 번 걸어 본 사람들은 발 끝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 아찔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p>

▲ 경사와 꺽이는 각도가 어머어마한 창신동 '회오리길' (사진=김영옥 마을기자)
<p>회오리길을 다 내려오면 다양한 실들을 파는 홍표 실집이 있다. 그 실집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면 창신 골목시장이다. 창신 골목시장은 낙산에서 발원한 복자천을 복개하면서 생겨난 재래시장이라고 한다.</p>

▲ 창신 골목시장엔 매운 족발집이 꽤 많다.(사진=김영옥 마을기자)
<p>다문화가정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창신동에 늘어나면서 중국식 양꼬치, 인도와 네팔요리 등 각국의 다양한 음식점들이 생겨났으며 매운 족발은 창신 골목시장을 대표하는 유명한 음식 가운데 하나다.</p>

<p>♦ 주민들의 필요에 의해, 마을의 필요에 의해 마을공동체 조직이 하나씩 늘어나다</p>

<p>창신동 안에서 대부분의 가내 하청공장들은 객공팀으로 종합공장과 연결되는데 창신동에는 객공(일정한 임금이 아니라 작업량과 단가, 일당에 따라 임금을 받는 형식으로 고용된 노동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p>

<p>이들은 생활이 불규칙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육아와 돌봄에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 많았다. 이런 불편함을 느끼는 주민들이 하나 둘 모였고, 머리를 맞대고 마을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민들을 해결해 보려는 움직임들이 시작됐다. 이는 다양한 마을공동체 조직들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p>

<p>봉제업에 종사하는 가정의 아이들을 돌보는 지역아동센터(해송, 청암)들을 비롯해 학부모들이 직접 운영하는 '뭐든지 도서관'이 생겼다. 마을의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책을 읽고 필요에 따라 품앗이처럼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p>

▲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직접 운영하는 '뭐든지 도서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김영옥 마을기자)
▲ 젊은 디자이너들이 마을 안에서 봉제를 배워 작업하고 있는 '000간' (사진=김영옥 마을기자)
▲ 예비 사회적기업 어반하이브리드가 디자이너들과 봉제공장을 연계하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獵?쉐어팩토리 '창신AZIT' (사진=김영옥 마을기자)
▲ '창신아지트' 한쪽 벽엔 동대문시장 도매시장에서 일감을 발주받아 동대문 종합시장에서 원부자재들을 실은 오토바이가 창신동으로 들어오고, 창신동 안에 있는 큰 원천공장에서 옷을 재단해 작은 가내 하청공장에 일감을 나눠주고, 옷이 완성되면 마무리 작업(시야게 과정)을 거쳐 도매시장에 납품되는 거대한 삼각형 구조가 큼직한 천 위에 그려져 있어 창신동 안에서의 봉제산업의 경로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사진=김영옥 마을기자)
<p>약 240여개의 봉제공장들이 가입해 있는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과 예비사회적기업 '어반하이브리드'가 디자이너들과 봉제공장을 연계하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는 쉐어팩토리 '창신AZIT', 공감 공유 공생을 위한 디자인을 추구하며 커뮤니티 디자인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역 재생을 추구하는 예비사회적기업 '000간' 등은 창신동 봉제마을 마을공동체 커뮤니티 조직으로 마을과 연계해 가며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탄생됐다.</p>

<p>더 많은 젊은 청년들이 마을에 들어와 일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p>

<p>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창신동 라디오 '덤'은 세계 최초로 봉제사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라디오 방송, 문해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며 진행한 어머니학교 방송 등을 시도해 창신동 봉제마을 사람들을 더욱 긴밀하게 만들었다.</p>

▲ 마을 안에 주민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커뮤니티 공간들-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창신동 라디오 '덤'과 역사문화공연을 하는 사회적기업 '아트브릿지' (사진=김영옥 마을기자)
▲ 마을 청년들이 모인 '창신은 대학'에서 운영하는 커뮤니티 공간 '한다리중개소' (사진=김영옥 마을기자)
<p>역사문화 공연을 하는 사회적 기업 '아트브릿지'는 마을에서 아이들을 위한 역사극 공연도 하고, 지역 아이들과 함께 연극도 만들며 다양한 행사를 마을 안에서 진행했다.</p>

<p>마을 안에서 놀고, 배우고, 일하는 청년들이 모인 '창신은 대학'에서 운영하는 커뮤니티 공간 '한다리중개소' 는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 인 창신동 봉제마을 사람들은 연결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p>

▲ 창신동 봉제마을의 맨 위에 있는 창신11길에서 바라 본 마을과 도심. 저 멀리 한양도성의 성곽도 보인다.(사진=김영옥 마을기자)
▲ 낙산 언덕 위의 커피숍과 퀼트 공방 '달커피와 달퀼트' (瑩?김영옥 마을기자)
▲ 달퀼트 안에는 봉제마을의 마스코트 '창이와 신이', '마중이와 팽이' 등의 퀼트 인형들을 만날 수 있고 만드는 체험도 가능하다. (사진=김영옥 마을기자)
▲ 낙산 언덕 위 커피숍 '달커피'에서 달커피를 기다리며(사진=김영옥 마을기자)
<p>도심과 한양도성의 성곽이 바라보이는 낙산 언덕 위의 커피숍이자 퀼트 공방인 <달커피와 달퀼트>에선 지는 노을과 멋진 도심의 야경을 감상하며 커피를 마시는 화사를 누릴 수 있고, 봉제마을의 마스코트 '창이와 신이', '마중이와 팽이' 등의 퀼트 인형들도 만나볼 수 있다.</p>

<p>이들 창신동 봉제마을 안에 있는 커뮤軀?공동체 조직들은 '창신마을넷'으로 뭉쳐, 온 마을이 함께 마을의 미래를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p>

<p>창신동 봉제마을은 허름하고 오래된 동네이지만 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마을의 형태는 봉제를 하면서 살아가기에 최적의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p>

▲ 창신길 양 옆 건물에는 작은 하청공장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사진=김영옥 마을기자)
▲ 창신동 봉제마을의 맨 위에 있는 길.(사진=김영옥 마을기자)
<p>'창신동의 자산은 마을을 위해 다양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이란 손경주 이사의 말처럼 마을사람들이 외부 자본에 의해 밀려나가지 않기 위해 창신동 봉제마을 사람들은 다양하고 의미있는 시도들을 하고 있었다.</p>

<p>창신동은 뉴타운 재개발이 해제되면서 창신숭인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됐다. 국토부와 서울시가 2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도시재생'이라는 멋진 방법으로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p>

<p>♦ 창신동 봉제마을 가는 길=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 1·3번 출구</p>

<p>♦ 창신동 봉제마을 여행= 종로구 골목길 해설사 프로그램-동네 골목길 관광 14코스 이용(최소 3인 이상, 최소 3일 전 종로구청 홈페이지 신청)</p>

<p>♦문의= 02-2148-18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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