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고의 딜은 '시장' 택한 것
대우증권 자금부장 때 외환위기 겪어
'성골 기득권' 버리고 IB업계 투신
웅진코웨이 매각 이끈 '딜 메이커'
윤석금 회장 설득해 'PEF 매각' 성사
사내 반대에도 인수금융 시장 개척
[ 유창재/김태호 기자 ] ▶마켓인사이트 IB스토리에 기사 전문
필요한 곳에 돈을 공급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게 금융의 역할이다. 한국에선 은행이 맡아왔다. 자연히 은행 면허권을 쥐고 있는 정부가 입김을 행사했다. 이른바 관치·정책 금융의 시대였다. 이제는 바뀌고 있다. 자본시장이 질적 양적으로 성장하면서다. 주식 채권 투자자들이 수익성과 성장성을 갖춘 기업에 자금을 공급한다. 투자은행(IB)업계는 그 대리인이다. 시장의 목소리를 기업에 전달하고 기업의 성장과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이들이다. 하나의 어엿한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국내 IB업계의 주역들을 만나봤다.
“대우증권을 그만둔 거죠.”
우문현답이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부사장)에게 ‘인생 최고의 딜(deal)이 뭐냐’고 물은 건 이런 대답을 기대해서가 아니었다. 한국 IB업계의 ‘맏형’으로 불리는 그다. 당연히 웅진코웨이 매각 등 자신이 이끌어낸 대형 기업 인수합병(M&A)을 인생의 딜로 꼽겠거니 생각했다.
○조직이냐, 시장이냐
사실 지금의 정 대표를 있게 한 것은 대우증권이다. 1988년 지인의 소개로 ‘잠시만 다니자’며 들어간 회사였다. 하지만 그는 금융에서 한국의 미래를 봤다. 남들보다 하루 두 시간씩 더 일했고, 33세에 불과했던 1997년 자금부장에 발탁됐다.
2년 뒤에는 ‘대우사태’의 한복판에 섰다.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던 시절이다. 폭풍과도 같은 하루하루가 지나는 동안 정 대표도 폭풍같이 성장했다. 당시 금융감독당국 수장, 재정경제부 외화자금과장 등 한국 경제의 운명을 짊어졌던 이들과 함께 호흡하면서다.
대우증권은 당시 부도난 대기업그룹의 계열 증권사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대우증권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본부장 승진 이후다. 자금부장에서 기획본부장으로 승진했다가 파생상품부장으로 ‘좌천’됐고, 다시 IB 담당 임원으로 발탁됐다. 사장이 바뀌고 주주가 바뀔 때마다 인사가 났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조직에 대한 기여보다 (정치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었느냐”가 운명을 갈랐다.
“조직이냐 시장이냐를 선택할 순간이 왔다고 느꼈어요. 대우증권 최고경영자(CEO)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척 玟?한국 IB업계를 개척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생각을 고쳐먹으니 ‘대우증권 성골’이라는 기득권도 별것 아니더군요.”
○IB는 저성장시대의 총아
2005년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아시아 최고의 투자은행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왜 조직 대신 IB라는 시장을 택했을까.
정 대표는 증권사가 위탁매매수수료로 먹고살 수 있는 시절은 자신이 대우증권에 입사했던 1988년에 이미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IB라면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금융시장에서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고성장 국면에서는 모험자본이 필요없습니다. 한 해에 20%씩 성장하면 은행에서 빌린 돈을 5년이면 갚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성장이 둔화되는 시기가 오면 20년, 30년 후 가치를 현재 가치로 할인하거나 성장 모델을 보고 투자하는 자본시장이 발달하게 됩니다. 연기금·공제회의 운용자금이 불어나면서 장기 투자 자산에 대한 수요도 늘어납니다.”
정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는 웅진코웨이 매각이다. 은행이 아닌 자본시장 주도로 이뤄진 사실상 첫 구조조정 사례다. 이 딜을 이끌어내기 위해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을 설득한 일화는 유명하다.
2012년 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웅진코웨이 매각을 통해 빚을 갚으려던 윤 회장은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해 채권단을 경악하게 했다. 알짜회사인 웅진코웨이도, 자신의 경영권도 모두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윤 회장에 등을 돌렸고 윤 회장도 은행들에 대한 원망을 잔뜩 쏟아냈다.
○인수금융 年 200억원 수익
당시 어렵사리 윤 회장을 만난 정 대표의 말이다. “모두 회장님이 원해서 한 일입니다. 지금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건 사기입니다. 샐러리맨의 신화인 회장님이 망가지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웅진코웨이와 케미칼을 매각하시면 작게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정 대표의 진정성에 감복한 윤 회장은 “당신 같은 사람을 진작 만났더라면 이런 위기에 처하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웅진코웨이는 사모펀드 MBK에 팔렸다.
그의 꿈은 IB업계 ‘대부(代父)’다. “IB업계를 위해 더 많은 시장을 개척해야 얻을 수 있는 명예”라고 말했다. 증권사에 인수금융 시장을 열었던 것도 그다. ‘증권사가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사업’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위험한 일이니까 IB가 해야 한다”고 맞섰다. 현재 NH투자증권은 인수금융으로 1년에 200억원씩 벌고 있다.
“시장 개척도 중요하지만 기본을 다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업, 정부, 공공기관 등 고객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죠. 그렇게 자본시장의 터전을 닦고 시장을 키우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창재/김태호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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