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론 대한민국 미래 없다] 윤종용 "헝그리 정신 사라지고 기업인 업신여기는 분위기 만연"

입력 2015-10-11 17:54  

한경 창간 51주년 기획
윤종용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장

국가 개조한다는 생각으로 사회 전 분야 개혁해야
규제 철폐 끝장토론 했지만 푸드트럭 말고 뭐가 바뀌었나
개천에서 용 나올 수 있도록 평준화 교육 과감히 바꿔야

만난 사람=하영춘 산업부장



[ 정리=김순신 기자 ]
서울 역삼동에 있는 개인 사무실에 들어서자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쓰인 액자가 먼저 눈에 띄었다. ‘만물의 본질을 탐구해 지혜에 이른다’는 뜻이다. 엔지니어로서 삼성전자를 초우량 기업으로 일구는 데 기여한 경영인에게 참 잘 어울리는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혜안을 구하러 왔습니다”고 용건을 말했다. 그러자 “어렵지요. 그런데 어디 딱 떨어지는 묘안이 있습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윤종용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장(71)은 그렇게 한국의 미래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42년간 삼성에서 일했고, 그중 18년 동안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그다. 세계 100대 CEO 중 3위(2012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선정)에 오른,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영인이다. 그런 그도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고 했다. “앞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국가를 개조한다는 생각으로 사회 전 분야를 개혁해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발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반(反)기업 정서를 걷어내고 제조업을 살려야 한다”는 그에게서 한국의 미래에 대해 들었다.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는 우려가 많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오는데요.

“경제 활력이 눈에 띄게 떨어져 있습니다. 잠재 성장률도 하락하고 있고요. 이런 식으론 선진국 진입이 불가능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정책 입안자들이 적절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국가를 개조한다는 생각으로 사회 전 분야를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자 자동차 등 주력 산업들도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걱정됩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은 세계 최강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경쟁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요. 한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잘살아 보세’라는 헝그리 정신도 사라졌습니다.”

▷기업이 활력을 찾으려면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인이 많아야 할 텐데요.

“불행히도 기업가 정신이 보이지 않네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이상한 풍조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경제 성장의 주축인 기업들의 성장에 거부감을 갖고 기업인들의 노력을 업신여기는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이로 인해 반기업 정서가 형성됐고, 기업과 기업인들은 위축됐습니다.”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고 경제 활력을 되찾을 묘안이 없습니까.

“단기적 처방으로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기업인들의 자신감을 찾아주는 것이 우선 중요합니다. 특히 정치권이 기업가 정신을 되찾도록 전면에 나서야 해요.”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지요.

“가장 먼저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다양한 규제를 철폐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도 규제 철폐에 힘을 쏟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이뤄진 게 뭐가 있나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7시간 넘게 규제개혁 토론을 했지만, 고작 ‘푸드 트럭’만 허용됐을 뿐입니다. 규제가 많으면 부정부패가 싹틉니다. 부정부패는 규제를 먹고 자라니까요.”

▷한국 경제가 어려워진 원인 중 하나가 중국 기업의 부상(浮上)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중국 기업들은 꾸준히 기술 개발을 해왔습니다. 이제 한국 기업의 턱밑까지 쫓아 왔어요. 모든 분야에서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으로 봐야 합니다.”

▷한국 기업들로선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요. 대안은 무엇입니까.

“중국과 전면전을 하면 살아남기 힘듭니다. 선택과 집중을 하고 차별화에 나서야 해요. 우리가 강하고 자신 있는 분야에 집중적으로 연구개발(R&D) 투자를 해서 고급화(기능, 성능, 품질, 디자인)에 성공해야 합니다. 유럽 산업의 경쟁력이 미국에 거의 추월당했지만 독일의 자동차, 중전기, 정밀기계, 정밀화학, 제약산업 등은 아직도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과 정부는 독일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습니다.”

▷결국 제조업이 강해야 한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제조업이 근간입니다. 서비스업이 중요하다고들 얘기하는데, 서비스업이 잘 되려면 제조업이 강해야 합니다. 미국이나 일본도 한번 보세요. 해외로 나간 제조업체를 유턴시키기 위해 많은 정책을 내놓고 있지 않습니까.”

▷기업이 강해지려면 R&D 투자를 늘려야 할 텐데요.

“불확실성이 커지면 기업은 보수적이 됩니다. 투자도 줄일 수밖에 없지요. 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R&D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유인책을 강력하게 펼쳐야 합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R&D 투자에 대해선 세금을 면제해주거나 줄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첨단산업의 R&D에 나섰다가 실패할 경우 손비처리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실패를 감내하려는 기업이 늘어납니다.”

▷너무 정부 탓만 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아, 그렇게 들렸나요(웃음). 물론 기업인의 자세도 중요하지요. 이병철이나 정주영 같은 분들은 불황이고 위기일 때 과감히 도전하고 투자했습니다. 요즘 기업인들은 이들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서비스산업은 어떻습니까.

“물론 중요하죠. 분야별로 전략을 아주 잘 세워야 합니다. 특히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것이 좋죠. 성공 가능성이 높은 K팝, 의료, 관광, 교육 등을 체계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자면 정부가 과감히 규제를 풀어야 합니다. 투자개방형 병원 하나 허용하지 못해 놓고 무슨 서비스산업 육성을 얘기합니까.”

▷바이오 로봇 등 신산업 육성도 아주 중요하다고들 얘기합니다만.

“역사적으로 보면 선발주자(first mover)가 반드시 최강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최강자가 된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삼성전자도 스마트폰 시장에 애플보다 늦게 뛰어들었지만 쫓아가기 전략으로 최강자가 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다양한 가능성에 적응할 수 있고 능력 있는 인재를 키워 놓는 것이 신산업 육성의 가장 빠른 길입니다.”

▷그렇지만 기업들은 창의적 인재가 부족하다고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교육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수학, 과학, 역사, 인문학 등 폭넓은 분야에서 생각하고 질문하게 하는 교육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하향 평준화를 강요하는 평준화 교육도 폐지해야 합니다. 입학시험을 부활시키고, 대학입시도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합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거죠. 역사는 도전과 경쟁을 통해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저출산이 심각합니다. 창의적 인재는커녕 노동인구도 부족해지고 있는데요.

“적蔓?이민수용정책을 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이민청을 세워야 하고요. 지금 이민은 결혼을 통한 이민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걸 방치하면 10~20년 뒤에는 사회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필요한 고급 인력은 수혈하지 못하고요. 체계적으로 부족한 인력을 외국에서 들여오는 방법을 모색할 시점 아닌가요.”

▷강성 노조와 이들을 싸고 도는 정치권도 경제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고용에도 유연성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도 기득권을 지키는 데 혈안인 강성 노조들은 고용마저 세습하자고 합니다. 공권력도 이들 앞에선 무기력합니다. 이들을 감싸고 도는 정치인들을 의식해야 하니까요. 모든 주체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진지하게 걱정할 때입니다.”

■ 윤종용 위원장은
18년간 삼성 CEO로 지내…세계적 기업 키워낸 일등공신

삼성전자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낸 일등공신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66년 삼성그룹에 엔지니어로 입사해 2008년 삼성전자 고문으로 물러날 때까지 42년간 삼성에서 일했다. 1990년 삼성전자 가전부문 대표이사를 시작으로 18년 동안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월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뒤 과감한 구조혁신을 통해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1998년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국제산업공학협회(IIE)에서 선정한 ‘올해의 최고경영자’로 뽑혔다.

■ 약력

△1944년 경북 영천 출생 △196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삼성그룹 입사 △1990년 삼성전자 가전부문 대표이사 △1995년 삼성그룹 일본본사 사장 △1997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1999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2004년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한국전자산업진흥회장 △2008년 삼성전자 상임고문 △2011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장

정리=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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