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명 기자 ] “다들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배가 물에 뜨기는 할까’ 걱정했어요. 안 뜨면 모든 게 끝장이었죠.”
김정홍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본부 기정(技頂·60·사진)은 1974년 2월15일 새벽의 울산조선소 1도크에서 느낀 팽팽한 긴장감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1972년 조선사업 진출을 선언한 현대중공업(당시 현대건설 조선사업부)은 이날 1호 선박인 26만t급 유조선 진수(進水·배를 처음 물에 띄우는 일)에 나섰다. 배가 뜨지 않는다면 회사는 물론 한국 조선산업의 미래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만 19세, 갓 입사한 용접공이던 김 기정도 마음 졸이며 진수식을 지켜봤다. 정주영 당시 사장이 현장을 지휘했다. 균형을 잃고 휘청이는 배에 로프를 걸어 밀고 당기기를 세 시간여. 김 기정은 “도크를 빠져나온 배가 바다에 뜨자 4000여명의 직원 모두가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김 기정은 1974년 용접공으로 시작해 생산기술직 최고 직위인 기정에 오르기까지 40년간 현장을 지킨 울산조선소의 ‘산증인’이다.
당시 직원들에게 아산(峨山)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기업인으로 각인됐다. 김 기정은 “어느 누구도 ‘맨땅’에서 1년3개월 만에 26만t짜리 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지 않았을 때 직원식당, 조선소 잔디밭에서 아산은 늘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자. 된다고 여기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었다”고 전했다.
1976년의 일화도 소개했다. 1호 선박을 인도한 지 2년 뒤인 그해, 울산조선소에는 일감이 뚝 끊겼다. 오일쇼크 여파로 세계 각국이 석유 소비를 줄인 탓에 유조선 수주량이 급감했다. 설상가상으로 지어 놓은 2호 선박 등 세 척의 유조선 인수를 선주가 거부했다. 김 기정은 “이러다 회사 문 닫는 것 아니냐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며 “하지만 정 회장이 ‘다 지어 놓은 배를 안 사가? 그럼 우리가 해운회사 하나 만들지’라며 아세아상선(현 현대상선)을 설립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모두가 안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때 우리는 어떤 위기든 기회로 바꾸는 정 회장을 믿고 따랐다”고 덧붙였다.
김 기정이 생각하는 기업가 정주영은 어떤 사람일까. “한 번은 회사 강당에서 정 회장이 이렇게 말했어요. ‘여러분이 열심히 일하면 회사가 잘되고 월급도 많이 받을 거요. 그러면 아파트도 사고, 세탁기도 살 수 있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그 말대로 된 40년이었습니다.”
울산=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이슈] 40호가 창 보면서 거래하는 기술 특허출원! 수익확률 대폭상승
2015 한경스타워즈 실전투자대회 개막..실시간 매매내역,문자알림 서비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