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영합 행사로 혈세 낭비 지자체
도덕적 해이를 척결하는 계기되길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yjlee@khu.ac.kr >
몇 해 전 가깝게 지내던 인구 15만명 지방도시 시장에게 시의 재정상황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예산은 얼마냐에 이어 재정자립도는 몇 퍼센트인가라고 묻자 이 시장은 나를 마치 세상 물정에 어두운 어린애 보듯 하면서 한마디 던졌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게 좋은 건 아니야.”
요지인즉슨 재정자립도가 낮다는 것은 자체 세입보다 더 많은 돈을 끌어다 쓴다는 걸 의미하며 그렇게 외부에서 돈을 끌어와 일을 벌이는 게 시장의 능력이고 재선으로 가는 첩경이라는 이야기였다. ‘남의 돈’으로 사는 살림이니 재정의 건전화나 합리화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고 비용과 편익에 대한 고려도 뒷전으로 밀려나게 마련이다. 개별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일이겠지만, 문제는 이렇게 느슨하게 쓰이는 돈이 결국은 국민의 혈세라는 사실이다.
지방 재정과 관련한 이런 도덕적 해이의 극치는 지자체들이 유치하는 대규모 국제행사다. 일단 유치만 해 놓으면 국가적 위신 때문에라 ?결국에는 중앙정부가 부족한 예산을 대부분 메워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에서 자신들의 재정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게 뻔한 전시성 행사들도 서슴없이 벌인다. 지방의 소도시 전남 여수가 세계엑스포를 유치한 것이나 강원 평창 같은 일개 군이 동계올림픽을 하겠다고 나서는 게 대표적인 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지난 2~11일 열린 ‘2015 경북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117개국에서 70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한 대규모 대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규모의 다른 국제대회에 비해 엄청나게 적은 비용으로 치러졌다는 점이다. 이번 6회 대회에 들어간 예산은 모두 1653억원으로, 4년 전 5회 대회에 브라질이 2조원을 쓴 것과 비교하면 10%에도 미치지 않았다. 저비용(6190억원)으로 치러졌다는 올해 7월 광주유니버시아드(146개국 1만3000명 참가)와 비교해도 총액으로는 26%, 참가 인원을 감안해도 절반의 비용밖에 들지 않았다. 반면 한국국방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세계군인체육대회의 생산 유발효과는 3115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1542억원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저비용·고효율의 대회를 치를 수 있었던 것은 조직위원회와 개최지인 문경시가 많은 비용이 드는 경기장 시설과 선수촌 건설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장 시설은 문경시 호계면에 있는 국군체육부대 시설을 활용하는 한편 많은 경기를 해당 시설을 갖춘 경북 일대 8개 도시에서 분산 개최함으로써 해결했다. 흔히 이런 대회를 할 경우 개최지가 ‘나홀로’ 행사를 고집하기 십상인데 문경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총 24개 종목 중 3종목(육·해·공군 5종경기)의 구조물 정도만 새로 마련하면 됐다.
경기장과 더불어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선수촌이다. 통상 아파트를 지어서 선수촌으로 활용한 뒤 이를 분양해서 해결하는 것이 이제까지 흔히 사용한 방법이지만, 인구 7만8000명인 문경시에서 아파트를 짓는다 한들 분양이 쉽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선수촌은 영천3사관학교·괴산군사학교와 함께 문경의 캐러밴(캠핑카 같은 이동식 숙소) 350대를 활용했다. 조직위는 캐러밴(대당 2650만원)을 주문 생산해 업체로부터 3개월간 대당 1000만원에 임대했고, 나머지 대금은 시민들에게 1650만원에 모두 분양해 충당했다. 선수촌 아파트를 신축하면 800억원이 필요했겠지만 캐러밴으로 35억원에 해결한 것이다.
이번 세계군인체육대회는 지자체가 감당하지도 못할 이벤트를 중앙정부에만 기대던 종래의 도덕적 해이에서 벗어나 저비용·고효율의 행사를 벌인 좋은 사례다. 이런 대형 행사를 염두에 두는 모든 지자체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도 지자체들의 행사에 끌려 들어가 국민 혈세를 쏟아붓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원칙에 따라 행사를 유치한 지자체가 자력으로 행사를 치르게 해야 할 것이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yjlee@kh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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