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최광·홍완선 모두 나가라"…국민연금 갈등 '동반 퇴진'이 능사인가

입력 2015-10-25 19:26  

현장에서

고경봉 증권부 기자 kgb@hankyung.com



[ 고경봉 기자 ] “둘이 싸워 생긴 분란이니 둘 다 나가라.”

50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연임 여부를 둘러싼 ‘인사 파문’이 확산되자 보건복지부는 최광 이사장과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에게 동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둘 사이의 갈등으로 조직에 문제를 초래했으니 모두 물러나야 한다는 게 복지부 논리로 읽힌다. 하지만 투자업계에선 정확한 시비를 가리지 않은 채 ‘싸운 애들 벌주는 식’의 문제 해결은 잘못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우선 두 사람은 기금운용본부 독립 문제에 관한 의견차가 있었을 뿐 싸운 게 아니다. 한 운용업계 대표는 “홍 본부장이 최 이사장의 결정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발하거나 항명한 적이 없다”며 “복지부가 국민연금의 인사와 조직체계 등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고 정리하지 못해 벌어진 일을 마치 ‘국민연금 내부 싸움’처럼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는 “복지부가 홍 본부장의 연임을 반대한 최 이사장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연일 강도 높게 비난하다가 난데없이 홍 본부장도 같이 나가라고 입장을 바꿨다”며 “(복지부의) 권위적이고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의 동반 퇴진 방침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것이란 우려가 높다. 시장과 차기 기금운용본부장 후보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어서다. 홍 본부장 재임 기간에 국민연금은 정부 기금운용평가에서 매년 ‘탁월’ 평가를 받았다. 복지부 논리대로라면 앞으로 기금운용본부에 운용 성과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게 관건이 된다. 홍 본부장이 퇴진 압박을 받는 이유로 삼성물산 합병 전에 그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을 만난 점도 거론된다. 그렇다면 차기 운용책임자는 투자기업에 중요한 변동 상황이 생기더라도 주주권 행사를 위해 기업 오너, 경영진과 만나 소통하지 말라는 얘기다. 복지부가 어떤 운용책임자를 원하는 건지 궁금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 분야에선 벌써 파행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23일 열릴 예정이던 리스크관리위원회는 서면으로 대체됐다. 같은날 예정됐던 기금운용위원회는 취소됐다.

국민연금이 야심차게 준비해온 ‘기금운용 국제 콘퍼런스’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오는 29일 열리는 이 행사에는 스티브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 윌리엄 콘웨이 칼라일 회장 등을 비롯해 전 세계 투자업계의 거물들이 참석한다. 행사 직후 옷을 벗을 사람들이 국민연금의 향후 계획을 알리고 해외 투자자로부터 협조를 구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전 세계 주요 투자전문가들 앞에서 국민연금은 취약한 거버넌스(지배 구조)의 민낯을 드러내는 셈이다. 글로벌 투자자들까지 관심을 갖는 사안인 만큼 복지부가 명확한 원칙 위에 책임 소재를 따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경봉 증권부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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