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 구태가 구조조정 걸림돌"…은행의 3 가지 제언
[ 류시훈 / 김일규 / 박한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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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 체질을 튼튼하게 바꿔야 한다는 취지엔 공감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몰아치기식 구조조정이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게끔 유인책을 줬으면 한다. 요즘 불안해하는 기업이 많은데, 살릴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빨리 진행돼야 한다.”
10개 은행장들은 27일 진웅섭 금융감독원장과의 조찬 간담회를 한 뒤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 신속한 옥석 가리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는 배경엔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제도가 자리잡고 있다며 차제에 시스템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1) 은행에 충당금 적립 자율권 줘야
C등급 포함되면 신규 대출까지 부실로 분류…지원 어려워져
은행들은 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주요 요인의 하나로 구조조정 때 금융당국이 요 맨求?‘충당금 폭탄’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이 살릴 기업은 확실히 살리고 한계기업은 빠르게 퇴출하는 것인데, 틀에 얽매인 대손충당금 규정이 이를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 신용위험평가에서 특정 기업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인 C등급으로 분류됐을 때 기존 여신은 물론 신규 대출까지 일시에 부실채권으로 분류해야 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워크아웃기업은 채권·채무재조정을 통해 재무구조가 개선되는데도 금융당국의 과다한 충당금 규제가 결과적으로 구조조정을 지체시킨다는 게 금융권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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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업 감독 규정은 △정상 여신은 대출액의 0.85% 이상 △3개월 미만 연체된 요주의 여신은 7% 이상 △3개월 이상 연체된 고정 여신은 20% 이상 △3개월 이상 1년 미만 연체되고 채권회수가 의문시되는 회수의문 여신은 55% 이상 충당금을 쌓도록 하고 있다. 대출금을 떼인 추정손실 여신은 10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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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대표는 “기업 구조조정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의 적극적인 참여가 선행돼야 한다”며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 및 충당금 적립에 대한 자율권을 은행에 어느 정도는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신규 자금지원에 한해 충당금을 일정 기간 절반 정도만 쌓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2) 은행 괴롭히는 ‘배임 공포’ 걷어내야
기업지원 독려하다 부실 땐
여신담당자 수사·제재 빈번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채권단 자율협약 등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 참여하는 은행 여신 담당자들은 “나중에 배임죄에 걸려 처벌받게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울 때가 많다”고 하소연한다.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구조조정이 실패하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로 검찰 등에 고발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채권단 의사결정 절차에 문제가 없었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이 산업은행 임직원 10여명에 대해 STX그룹 부실대출을 이유로 지난해 8월 징계에 나섰던 것도 그런 사례다. 최근 열린 조선업종 관련 채권단 회의에서도 “이러다가 나중에 배임으로 걸리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오갔다고 한다.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감독당국이 자금난에 처한 기업 지원을 독려하다가도, 나중에 부실 문제가 불거지면 제재하는 행태가 반복되면서 은행들은 살릴 수 있는 기업에 대한 지원에도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구조조정 작업이 실패로 끝났다고 하더라도 자금지원 등의 과정에서 고의나 중과실이 없었다면 제재와 수사를 최소화하는 원칙을 확고하게 지켜야 기업 구조조정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3) 채권단에 구조조정 인센티브 필요
기업정상화 단계따라 이익 거두게…CB·BW 인수권 부여할 만
금융회사들이 기업 구조조정에 적극 나서도록 하려면 정상화 단계에 따라 추가적인 이익을 돌려받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조조정 성공에 따른 확실한 인센티브를 주고, 이게 금융회사 수익성 제고에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대출을 주식으로 전환하는 출자전환이 있지만, 미래가 불투명한 기업 구조조정에 적극 나선 보상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이 때문에 미리 정한 가격에 해당 기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거나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인수할 수 있는 옵션을 채권 금융회사에 주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시행 중인 이익공유형 대출과 비슷한 제도를 기업 구조조정에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익공유형 대출은 중진공이 기술성과 미래성장 가능성이 큰 중소기업에 저금리로 연간 20억원까지 대출한 뒤 영업성과가 좋으면 추가 이자를 받는 게 핵심인 상품이다. 지원받은 기업은 초기엔 낮은 고정금리로, 향후 영업이익이 발생하면 그 이익과 연동해 매년 추가로 이자를 내면 된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채권단이 미래의 이익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어느 정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며 “미래의 유리한 시점에 행사할 수 있는 권리만 주더라도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유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류시훈/김일규/박한신 기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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