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집 나가 동거한 남편 이혼 청구 첫 허용

입력 2015-11-01 09:38  

혼인 파탄에 책임이 큰 배우자도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을 적용한 첫 이혼 결정이 나왔다. 오랜 시간이 흘러 혼인 파탄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수 없을만큼 결혼 생활이 이미 망가진지 오래일 경우다.

1일 서울가정법원 가사항소1부(민유숙 수석부장판사)는 남편 A씨가 45년 전 결혼한 부인을 상대로 낸 이혼 소송에서 A씨의 청구를 기각한 1심을 파기하고, 이들의 이혼을 결정했다.

이들 부부는 지난 1980년 협의 이혼한 뒤 3년 후 다시 혼인 신고했지만 A씨가 다른 여성과 동거하면서 결혼 생활이 망가졌다. 첫 동거를 청산한 A씨는 다시 다른 여성과 동거를 시작해 자식도 뒀다. 출산 직후 A씨는 이혼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후 25년 간 사실상 중혼 상태로 지내온 A씨는 장남 결혼식 때 부인과 한 차례 만났을 뿐 이후 만남도 연락도 주고 받지 않았다. 2013년 A씨는 다시 법원에 이혼 소송을 냈고 1심은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A씨는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23일 2심은 '혼인생활 파탄의 책임이 이혼 청구를 기각할 정도로 남지 않았으면 예외적으로 이혼을 허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인용해 "부부로서의 혼인생활이 이미 파탄에 이른 만큼 두 사람은 이혼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25년동안 별거하면서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사라졌고, 남편의 혼인파탄 책임도 이젠 경중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희미해졌다고 본 것이다. 남편이 그간 자녀들에게 수 억원의 경제적 지원을 해왔고, 부인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 이혼을 허용해도 축출이혼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올해 9월1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13명 중 7명의 찬성으로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현재의 유책주의는 유지했다.

다만 찬반이 6대6으로 팽팽하게 맞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유책주의에 찬성하는 캐스팅보트를 던졌다. 그러나 혼인파탄의 책임을 상쇄할 만큼 상대방과 자녀에게 보호·배려를 한 경우와 세월이 흘러 파탄 책임을 엄밀히 따지는 게 무의미한 경우는 이혼 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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