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서두르면 늦어진다

입력 2015-11-0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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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속도에만 매달리던 과거 특허심사 반성하고
특허 가치와 본질 살려야…특허분야 인력 충원 절실

최동규 < 특허청장 dgchoi15@korea.kr >



우리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서양에도 “서두르면 오히려 늦어진다(more haste, less speed)”는 격언이 있다고 한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갖고 일해야 한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일 것이다.

특허청에선 일 처리의 속도와 품질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과거엔 급속한 산업발전으로 불어나는 특허출원을 심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20여년 전 필자가 특허청에 몸담았던 시절만 해도 특허심사에 3년 이상이 걸렸다. “특허를 받아봐야 소용이 없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였다. 그 때문에 특허청에선 빠른 심사 처리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심사 처리 기간 단축에 열광하고 매몰됐다. 빠른 심사가 지고지순한 목표였고 노력이라 생각했다. 그 결과 심사 기간은 10개월 내외로 짧아졌다. 이제 국민이 수용 가능한 심사 속도를 달성했다고 본다. 그런데도 관성에 따라 아직도 속도에만 매진하고 있다.

보통 한 가지 일에 매진하다 보면 다른 것들이 희생될 때가 자주 생긴다. 특허심사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필자는 개혁의 기치로 삼았던 속도가 특허청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모두가 속도에 매몰됐기에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업무의 개선 의견은 항상 반대에 부딪혔고, 심사 품질과 같은 가치들이 희생되기도 했다고 본다.

개혁도 뒤돌아 볼 여유를 가져야 제대로 된다. 이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속도 때문에 다른 것을 희생하면 역설적으로 속도가 더 느려질 수 있다. 심사가 소홀해 애써 받은 특허가 무효가 되면, 오히려 속도가 늦어지고 발명가의 부담만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사를 잘하면 한 번에 끝날 일인데 말이다.

이제 속도의 딜레마에서 나올 때가 됐다. 10개월 정도인 현재 기간을 유지하면서, 1인당 심사 처리 건수를 적정한 수준으로 낮춰 발명마다 정확한 심사가 이뤄지도록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선 심사 인력 확충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정부 업무 전체를 기준으로 보면 특허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진 않지만 그 중요성은 나날이 더해가고 있다. 이에 공감하는 사람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정부의 귀중한 인적 자원을 특허 분야에 많이 배분하고, 특허에 좀 더 무게가 실리길 기대해 본다.

최동규 < 특허청장 dgchoi15@korea.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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