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업] 크루셜텍, 지문인식 이어 홍채까지…바이오 인증 기술의 '최강자'

입력 2015-11-12 07:00  

모바일 광마우스 OTP 개발…블랙베리 인기 타고 '성공 신화'
아이폰 열풍에 블랙베리 몰락하자 지문인식 기술로 돌파구 찾아
세계 14개 스마트폰 업체에 공급…홍채·정맥인식 등 신기술 개발



[ 안재광 기자 ]
모바일 부품업체 크루셜텍이 베트남에 공장을 지은 것은 2010년 8월이었다. 블랙베리의 요청 때문이었다. 크루셜텍은 당시 모바일 광마우스 OTP(optical track pad)를 캐나다 업체 블랙베리에 공급하고 있었다.

블랙베리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던 시기였다. 세계적으로 연간 1000만대 이상 팔렸다. 북미지역 직장인들이 특히 선호했다. 컴퓨터 키보드를 휴대폰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자체 입력장치와 OTP가 있어 업무용으로 쓰기 좋았기 때문이다.

블랙베리는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하자 크루셜텍에 한국을 벗어나 해외 생산라인을 갖추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블랙베리가 모바일 광마우스 공급의 약 98%를 크루셜텍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도발과 이로 인한 생산 차질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크루셜텍은 주력 고객사인 블랙베리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보다 블랙베리의 위기가 먼저 왔다. 애플의 아이폰 출시로 블랙베리의 인기가 확 꺾였다. 크루셜텍 베트남 공장의 OTP 생산량 또한 2011년 상반기 정점을 찍고 계속 줄었다.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크루셜텍 실적 또한 악화되기 시작했다. 2010년 246억원에 달한 크루셜텍의 영업이익은 2011년 179억원으로 줄더니, 2012년 적자로 돌아섰다. 이후 2014년까지 3년 내리 적자가 이어졌다. ‘또 하나의 벤처 성공신화가 꺾였다’며 많은 사람이 아쉬워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고 했다.

◆블랙베리 납품으로 성장과 위기 겪어

크루셜텍은 돌파구가 필요했다. 지문인식 모듈, 터치스크린 패널, 터치 드라이버 IC(집적회로) 등 신규 사업을 모색했다. 기존 사업의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다. 모바일이란 익숙한 분야로 주력 품목을 전환하는 게 성공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지문인식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문인식 기술은 기존 OTP의 광 인식 기술과 비슷했다. 수백만번 문질러도 닳지 않을 정도로 강도를 높이면서 스마트폰 표면과 잘 어우러지게 하는 코팅 기술도 있었다. 아직까지 미개척 분야여서 성장성도 높아 보였다.

크루셜텍은 스웨덴 FPC로부터 IC를 받은 뒤 자체 개발한 알고리즘을 넣은 지문인식 모듈을 2013년 일본 후지쓰에 처음 납품했다. 국내 휴대폰업체 팬택의 ‘베가’ 시리즈에도 지문인식 모듈을 넣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많이 팔리진 않았다. 소비자들은 아직 지문인식 기능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해 9월 아이폰5s가 나오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다른 스마트폰 업체도 애플을 따라하며 서둘러 지문인식 기능을 넣었다.

이듬해인 작년 9월 중국 화웨이가 고가 모델인 ‘메이트 7’에 지문인식 모듈을 넣은 게 ‘대박’이 났다. 한 달에 최대 70만대 넘게 팔리며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화웨이의 구매총괄 임원이 올초 김종빈 크루셜텍 사장을 중국 본사로 불렀다. 통상적인 부품 단가 인하 요구는 없었다.

대신 ‘크루셜텍 덕분에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며 이례적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그만큼 시장 반향이 컸다. 화웨이는 이후 중저가 모델로 지문인식 기능을 확대했다. 스마트폰 뒷면에 있는 정사각형 모양의 크루셜텍 지문인식 모듈은 화웨이의 상징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후 HTC, 소니, LG전자 등이 줄줄이 크루셜텍에 주문했다.

◆지문인식 모듈로 사업전환 성공

크루셜텍은 현재 세계 14개 스마트폰 업체 40여개 모델에 지문인식 모듈을 공급하고 있다. 화웨이를 비롯해 메이주, 오포 등 중국 기업이 다수다. 일본 소니와 후지쓰, 대만 HTC,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등도 고객사다.

한국에선 LG전자가 지난 9월부터 ‘V10’ 모델에 크루셜텍 부품을 넣기 시작했다. 김 사장은 “자체적으로 지문인식 모듈을 개발한 애플과 삼성전자를 제외하고 지문인식 기능을 넣은 사실상 모든 스마트폰 업체가 우리의 고객”이라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스마트폰 업체들이 서로 지문인식 모듈을 달라고 아우성”이라며 “100만대 미만 신규 주문은 받기가 힘들 정도로 물량이 달린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베트남 공장에선 연간 1억2000만개까지 생산할 수 있다. 생산 가능량을 조만간 2억개로 확대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스마트폰에 지문인식 모듈이 필수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올 상반기 월 100만대 미만이던 생산량이 지난달 700만개를 넘었다”며 “올해만 3300만개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홍채인식으로 기술 확장

크루셜텍은 홍채, 정맥 등 사람의 다양한 생체정보를 인식하는 모듈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홍채인식은 별도의 카메라를 달지 않고 기존 스마트폰 카메라를 활용해 비용을 줄이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김 사장은 “고액 결제를 할 때는 지문인식만으로 본인 인증을 하기엔 좀 불안하다”며 “지문을 기본으로 하고 홍채, 정맥 등으로 추가 인증을 해 보안성을 강화하는 방식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오 인증 모듈의 적용 범위도 확대할 예정이다. 기존 모바일 위주에서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제품과 자동차, 가전제품 등 쓰임새가 확장될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김 사장은 “과거 블랙베리 때의 교훈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특정 고객사와 특정 제품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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